전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전사모’를 아십니까. 퇴직자 모임이지만 파업 땐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일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가 일하는 상황이 자꾸 생기면 안된다.”》
인터넷 검색 창에 ‘전사모’를 치면 2개의 전사모가 나옵니다.
하나는 ‘전두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 발전노조의 파업으로 알려진 ‘전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38년 동안 한국전력과 남부발전에서 발전소 운전과 정비 등의 일을 하다 2004년 퇴직한 하석호(60) 씨는 후자(後者)의 회원입니다.
하 씨는 지난달 말 전 직장에서 “노조가 파업을 할 것 같은데 대신 일할 수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즉시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파업이 15시간 만에 끝나 하 씨가 현장에 투입되는 일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발전노조는 2002년에도 37일간 파업을 했습니다.
당시 노조원이 아니었던 그는 비상근무를 했습니다. 하루 12시간씩 맞교대 근무였지만 항상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라 회사 강당에서 매트리스를 깔고 잤습니다. 갈아입을 속옷은 부인이 가져와야 했답니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였을까요. 이번 파업을 지켜본 하 씨는 “정말 명분이 없는데 왜 강행했는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전사모는 2002년 발전노조 파업이 끝난 뒤 산업자원부가 파업 대책의 하나로 2003년에 만든 발전회사 퇴직자들의 모임입니다. 혹시라도 파업이 길어지면 대신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장기 파업에 대비한 일종의 보험인 셈이죠.
요즘 기업들이 퇴직 인력을 다시 채용하는 제도와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전사모 회원들은 파업이 벌어지지 않으면 일할 기회가 없는 ‘땜빵’일 뿐입니다.
전사모 회원은 모두 530명. 이 가운데 238명은 이번 파업 때 당장이라도 현장에서 일하겠다고 답했답니다.
하 씨는 “대체인력으로 투입되면 얼마나 받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돈이 문제가 아니다. 현장에서 다시 일할 수 있다는 게 흥분된다”고 말했습니다.
일하고 싶어 하는 퇴직자와 국민을 볼모로 파업을 하는 노조, 그리고 파업에 대비해 퇴직자를 계속 훈련시키는 정부. 파업은 끝났지만 왠지 씁쓸합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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