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는 기관투자가나 외국인투자가에 비해 자금도 부족하고 영향력도 크지 않은 일반 개인투자자를 이르는 별칭.
그러나 그 앞에 ‘슈퍼’라는 글자가 붙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들은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에 이르기까지 어지간한 소형 펀드 뺨치는 규모의 자금을 굴린다.
수십억 원을 쥐락펴락하는 슈퍼개미 최모 씨는 “슈퍼개미들을 투자 성향별로 나누면 수십 종류는 될 것”이라며 “강호(江湖)는 넓고 은둔하는 고수(高手)는 많다”고 귀띔한다.
○ 슈퍼개미, 그들은 누구인가
최근 상장 기업의 지분을 5% 이상 사들인 슈퍼개미들이 수면 위로 속속 떠오르고 있다.
태원물산 지분을 8.20%까지 높인 최경애 씨, 대동공업의 주요 주주에 오른 박영옥 씨, 워낙 굴리는 자금 규모가 커 ‘투신사에 버금간다’는 뜻에서 ‘전주(全州) 투신’으로도 불리는 박기원 씨 등이 잘 알려진 슈퍼개미다.
하지만 이들 외에 드러나지 않은 슈퍼개미가 훨씬 많다는 것이 증권가의 정설이다.
슈퍼개미들 가운데 상당수는 특정 기업에 5% 이상 투자하기를 꺼린다고 한다. 지분 5%가 넘으면 공시를 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지분 5% 공시 의무를 피하기 위해 주가지수선물시장에 투자하거나, 데이트레이딩(하루에도 여러 번 사고파는 매매행위)하는 슈퍼개미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압구정동 미꾸라지’ ‘목포 세발낙지’ ‘광주은행 피스톨 박’ ‘불광동 고수’ ‘동원증권 할아버지’ ‘일산 가물치’ ‘홍콩 물고기’ ‘부국증권 쌍둥이 형제’ 등 제법 이름이 알려진 슈퍼개미 상당수는 선물시장 출신이기도 하다.
이들은 대체로 증권사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워낙 굴리는 돈의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증권사 영업점에서는 이들에게 사무실과 컴퓨터 등 편의시설은 물론 비서까지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증권사를 통해 이들에 관한 정보를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모 증권사 영업점에 슈퍼개미가 있다’는 소문이 돌면 다른 증권사에서 벌떼처럼 달려들어 슈퍼개미 유치전을 벌이기 때문이다.
○ 오직 투자에만 집중하는 프로
극히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자신만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제도권에 뛰어드는 슈퍼개미도 있다. 투자경험을 살려 직접 금융회사를 차리기도 한다.
‘압구정동 미꾸라지’로 알려졌던 KR선물 윤강로 대표나 신아투자자문 최정현 사장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은 모두 주가지수선물시장에서 전설로 불렸던 투자자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슈퍼개미는 ‘무명의 전업 투자자’로 남기를 원한다. 책을 내거나 강의에 나서는 일은 거의 없다. 유명세를 치르면 아무래도 투자 판단을 하는 데 있어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외국인투자가 따라하기로 큰 성공을 거둔 대전의 L 씨는 가끔 기자들과 만나기는 해도 자신을 ‘대전의 L 씨’ 이외의 말로 표현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을 정도다.
한 슈퍼개미 데이트레이더는 “실제로 ‘이렇게 투자하면 몇억 원 번다’는 식의 책을 내거나 강의에 나서는 사람들은 거의 슈퍼개미 축에도 못 끼는 경우가 많다”라며 “진정한 고수들은 돈 버는 비법을 절대 남에게 알려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