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뛰면 한방에”… 대출 ‘億 億’ 이자갚기 ‘헉 헉’

  • 입력 2006년 9월 18일 02시 56분


《이자 80만 원을 내고 나니 월급이 정말 ‘쥐꼬리만큼’ 남았다. 아내가 “집을 괜히 샀다”, “대출을 너무 많이 받은 것 아니냐. 왜 보험사에서 빌렸느냐”고 속을 박박 긁어 댔지만 달리 대꾸할 말이 없다. 금융회사에 다니는 김모(39·서울 강동구) 씨는 대출이자를 내는 매달 중순이면 아내의 ‘바가지’를 감수해야 한다. 김 씨는 2003년 9월 은행에서 1억5000만 원을 빌려 25평형 아파트를 구입했다. 집을 사놓기만 하면 집값이 오를 것으로 생각했다. 아내는 아파트 가격이 다른 곳에 비해 거의 오르지 않은 것도 못마땅하지만 남편이 변동금리로 생명보험사에서 돈을 빌린 것이 더 부담스럽다고 했다.》

대출 당시엔 은행과 비슷했던 보험사 대출금리가 지금은 1%포인트 이상 높아진 것. 대출계약을 해지하면 중도수수료를 내야 한다. 이자도 높아진다. 원금은 한 푼도 못 갚았다.

아내가 속상해 하는데도 김 씨는 저축은행에서 돈을 더 빌려 교육 여건이 좋다는 강남지역으로 이사 갈 궁리를 하고 있다. 김 씨는 “주택담보대출이 연소득의 2배를 넘었지만 지금이라도 집값이 오를 만한 지역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했다.

본보와 한국신용정보가 공동 분석한 전국 주택담보대출 현황은 집을 사면서 금융권 돈을 쓴 대부분의 사람이 김 씨처럼 연소득보다 많은 대출을 받아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도 주택을 투자 수단으로 보는 성향은 여전해 신규 대출이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 위험 수위 이른 주택담보대출

올해 6월 말 현재 대출 잔액 가운데 주소지 정보가 확인된 사람의 대출금액 17조990억 원은 3월 말(13조7200억 원)에 비해 3조3790억 원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1인당 주택대출금액도 평균 7262만 원에서 7719만 원으로 많아졌다.

서울 거주자의 1인당 평균 주택대출금액은 1억1000만 원으로 3월 말보다 544만 원 증가했다.

연령대별로는 50대의 1인당 주택대출금이 7711만 원으로 가장 많았다. 주택을 담보로 노후 자금을 마련하려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사업비 등 생산 활동을 위해 자금을 쓸 데가 많은 40대는 전 연령층 가운데 총주택대출금액이 121조9000억 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6월 말 현재 1인당 주택대출 규모(7719만 원)는 한국의 가구당 연간 평균소득의 2배를 넘을 만큼 많다.

그런데도 은행 보험 캐피털 등 금융회사를 통한 신규 대출이 여전히 큰 폭으로 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올해 6월 한 달 동안 신규 주택대출자 가운데 주소지가 파악된 5만7697명이 금융회사에서 빌린 돈은 4조9570억 원이다. 6월 말 현재 주택대출 잔액(332조300억 원)의 약 1.5%에 해당하는 규모다.

6월의 1인당 신규 주택대출금액은 평균 8591만 원으로 올해 예상 연간 소득의 2.4배 수준이다. 서울 거주자의 6월 신규 주택대출액은 평균 1억2192만 원으로 전달보다 495만 원(4.2%) 늘었다.

국민은행 PB사업부 박합수 부동산팀장은 “많은 사람이 일단 이자만 내고 원금은 나중에 집값이 오르면 집을 팔아 갚으려 하기 때문에 연소득을 크게 웃도는 수준의 대출을 받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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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막한 채무자 원금 상환

주택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대체로 매달 이자만 갚고 원금 상환은 만기일 때까지 미루는 경향이 있다.

올해 6월 말 현재 주택대출을 받은 사람 10명 중 8명은 시중은행을 통해 자금을 융통했다. 은행 대출고객은 그나마 새마을금고 신용협동조합 등 제2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한 사람보다 신용이 좋은 편이다.

대출 연장도 만기 때 간단한 서류만 작성해 제출하면 대부분 가능한 편이다.

하지만 제2금융권 대출 고객(전체 대출자의 4.6%)은 시중은행보다 높은 금리가 적용돼 높은 이자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또 대출고객 10명 중 9명 이상은 변동금리 조건으로 대출받았다. 최근 시중금리 상승으로 적잖은 가계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 당국 “안심하라” vs 전문가 “대출구조 바꿔야”

금융감독원은 이달 12일 브리핑에서 “금리 상승과 주택가격 안정으로 6월 이후 주택담보대출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며 현 주택대출 수준에 대해 안심해도 좋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주택담보대출 비율은 독일 네덜란드 홍콩 싱가포르 등 외국에 비해 아직 낮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은 주택대출 기간이 외국에 비해 훨씬 짧다는 점을 불안 요인으로 꼽는다.

지금은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경쟁으로 만기 연장을 쉽게 해주지만 시중금리가 상승하고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는 등 대출 여건이 나빠지면 연장해 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만기 시 제때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담보로 잡힌 집이 경매로 넘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서강대 김경환(경제학) 교수는 “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 같은 장기 고정금리 대출상품을 정책적으로 지원해 평균 대출 기간을 길게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 어떻게 조사했나

본보와 한국신용정보(한신정)가 공동 분석한 전국 주택담보대출 및 자영업자 대출 현황 자료는 은행연합회가 한신정에 통보하는 개인 신용정보를 토대로 한 것이다.

이 신용정보에는 은행 보험 카드 저축은행 등 각 금융회사에서 대출받은 사람의 대출금액, 만기, 금리, 연체 여부 등만 포함돼 있다.

신용정보회사는 개인별 신용등급 산정을 위해 이름, 직장, 주소지 등 개인 식별정보를 함께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각 금융회사가 개인 식별정보 제공을 꺼리기 때문에 신용정보회사는 전체 대출자 가운데 극히 일부에 대해서만 주소지 정보를 파악하고 있다.

또 은행연합회는 신용정보회사에 대출정보를 줄 때 개인의 모든 대출계좌 가운데 담보가 설정된 계좌가 하나라도 있으면 전체 계좌를 담보가 설정된 것으로 표시한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A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 1억 원, B은행에서 신용대출 1000만 원, C은행에서 카드대출 500만 원을 받았다면 전체 1억1500만 원이 주택담보대출로 분류되는 체계다. 또 개인이 보증기관에서 보증을 받은 뒤 은행 주택대출을 받았다면 보증금액과 대출금액이 모두 대출금으로 잡힌다.

따라서 실제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이번 분석에서 집계(332조300억 원)된 것보다 적을 수 있다.

하지만 주택담보, 카드대출 등 여러 형태의 대출을 받았어도 주택대출의 규모가 훨씬 크고 보증기관과 은행에서 이중으로 대출금이 집계될 때 대출 인원도 그만큼 늘기 때문에 1인당 대출 규모는 실제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고 한신정은 밝혔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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