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축협·농가 설득… ‘브랜드 한우’ 개발 나서
안성시는 농축산물 수입 개방에 대비하기 위해 1996년 한우 품질 고급화와 브랜드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안성에서 태어나 안성농업전문대 축산과를 나온 김 과장에게 프로젝트가 맡겨졌다.
그는 대학교수와 농협 및 축협 담당자, 축산 농가와 가공업자, 컨설팅회사 사장을 만나 “한우를 명품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아이디어를 달라”고 매달렸다. 브랜드마케팅 책을 탐독하고 해외 사례도 뒤졌다.
안성시청과 지역 14개 농·축협, 농가 등으로 ‘안성마춤 한우회’를 발족하고 안성시 일죽면의 20개 농가를 중심으로 ‘브랜드 한우’ 개발에 들어갔다.
이들 농가에선 우수 혈통을 분리해 쇠귀에 표준 바코드를 부착했다. 또 송아지의 출생과 구입, 사료급여량, 거세 일자, 체중, 이동 현황, 백신접종 약품 사용 및 방역 현황 등을 꼼꼼히 적고 안성시와 농협이 정해준 표준에 따라 사육을 시작했다.
안성시는 23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첨단시설을 갖춘 축산물 종합처리장을 지었다. 그로부터 2년 뒤 까다로운 품질관리 기준에 맞춘 한우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 자세 낮추고 백화점 시키는 대로 다해
문제는 마케팅이었다.
김 과장은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판로(販路) 개척에 나섰다. 하지만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안성마춤 한우’를 눈여겨보는 백화점은 없었다.
특히 ‘공무원 마인드’는 마케팅에 결정적 장애가 됐다.
백화점 식품매장에서 프로모션 행사를 진행할 때의 일이었다. “시설물 설치를 백화점 개점 시간인 오전 10시 전에 끝내 달라”는 백화점의 요청을 무시하고 문을 연 뒤 설치를 시작했다. 백화점에서 “이런 식으로는 일을 못한다”고 항의하자, 일부 공무원이 “어디 민간 유통업체가 공무원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느냐”며 흥분해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다.
공무원 식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가 백화점의 지적을 받고 고친 일도 많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김 과장은 “백화점이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 필요하면 시장도 불러오겠다”며 자세를 낮췄다. 정성이 통했는지 LG백화점은 1998년 마침내 “일단 부천점에서 한번 해 보자”는 답을 보내왔다.
그는 이미 ‘공무원’이 아닌 ‘장사꾼’이 되어 있었다. 백화점에서 “시장님이 직접 판촉을 하는 게 낫겠다”고 제안하자, 그는 이동희 안성시장에게 달려가 “현장에 가야 한다”고 매달려 성사시켰다. “을의 처지에서 생각하니 세상이 제대로 보이더군요.” 그의 소중한 경험이다.
○ 세계적 명품을 향하여
‘안성마춤 한우’ 매장은 LG백화점 부천점에 이어 안산점과 구리점으로까지 확대됐다. 2000년 광우병, 2002년 구제역 파동을 겪었지만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안성마춤 한우’는 다르다”는 입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2003년 말에는 신세계의 요청으로 타워팰리스 지하 슈퍼마켓과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에서도 팔리기 시작했다.
‘안성마춤 한우’의 전체 매출은 1998년 36억 원, 2002년 48억 원에 이어 올해는 67억5000만 원으로 예상된다. 농가들은 연간 1억∼5억 원의 이익을 내게 됐다.
김 과장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7월 안성시청 과장 중 서열 1위로 꼽히는 마케팅담당관 자리에 올랐다.
“이 정도론 만족할 수 없죠. ‘안성마춤 한우’가 세계적인 명품이 되도록 더욱 분발해야지요.”
안성=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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