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영주]기업이 가꾸면 예술이 활짝 핀다

  • 입력 2006년 9월 26일 03시 07분


최근 미국의 워런 버핏 회장이 재산의 85%인 37조 원을 자선단체에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사회와 시대를 이끌어 가는 사람의 의식과 결단이 시대의 어둠과 고통을 치유하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보여 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세계를 주도하는 미국의 힘이 이런 데서 나오지 않았을까.

꾸준한 관심과 지원으로 시대의 문화와 예술을 살찌워 나간 사람의 역사는 오래됐다. 2000여 년 전 로마시대 마에케나스(메세나 명칭의 기원) 재상과 르네상스시대를 이끌었던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이 그러했다. 미국의 록펠러나 카네기 역시 인생의 후반기에 문화예술의 최대 후원자로 큰 족적을 남겼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조선시대 사대부는 시 한 수와 사군자 등 그림 한 폭 정도는 너끈히 소화할 수 있어야 선비의 대열에 들었다. 귀족과 사대부는 예술에 대한 최대의 후원자였고, 훌륭한 제왕일수록 예술 발전이나 서적 간행에 앞장섰다. 한국의 문화유산으로 자랑스럽게 소개되는 탈춤과 판소리 열두 마당의 탄생은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당시 지도층의 열렬한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요즘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메세나협의회 주최로 5월 열린 ‘예술과 기업의 만남’ 결연식에서 김병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문화예술을 꽃피우는 것은 결국 자본가이며, 있는 사람들의 미덕”이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오늘날 기업이 오히려 예술로부터 많은 영감과 경쟁력을 제공받으며, ‘문화마케팅’을 위해 기업과 예술과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진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생활용품 회사인 유니레버는 회사합병에 따른 조직의 문화적 문제점을 연극인의 조언을 받은 상황극으로 극복해 큰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세계적 의류회사인 베네통은 ‘파브리카’라는 커뮤니케이션 연구센터에 세계 각국의 25세 이하의 젊은 문화예술인을 초청해 문화예술 활동을 후원하는 대신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공받는다. 패션시계로 유명한 스와치도 예술가가 직접 고안하고 제공한 예술시계로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장르를 개척하고 있다.

국내 기업도 문화예술의 창의성을 통해 더 경쟁력 있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으로 발전해 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최근 한국메세나협의회가 발표한 ‘2005년 기업들의 문화예술 지원 현황’에 의하면 국내 기업의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 규모가 2000억 원대에 들어섰으며 3년째 증가세다.

문화의 힘이 국가 경쟁력으로 떠오르는 21세기에 국내 기업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무슨 준비를 해야 하나. 먼저 기업은 문화예술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유수 외국 기업처럼 기업의 미래를 밝혀 나갈 문화 마케팅을 펴 나가야 한다. 정부는 기업이 더 많은 문화예술 지원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기업과 정부의 지원을 받은 문화예술계가 차원 높은 창작활동에 매진해 국민의 정서 함양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앞장서기 바란다.

박영주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장·이건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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