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국내 노동운동은 협력적 측면보다는 투쟁적 측면을 강조한다. 기업경쟁력과 근로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국가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대립과 갈등의 노사관계를 참여·협력적인 노사관계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국내 노사관계는 여전히 갈등과 투쟁에 매몰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칼(투쟁) 대신 “호미(투자 유치)와 괭이(일자리 창출)를 들겠다”는 한국노총의 자세는 올바르다.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많은 기업이 노사협력선언을 체결해 기업경쟁력과 근로자의 삶의 질을 동시에 달성하려고 한다. 무한경쟁, 저성장, 그리고 고실업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는 대립적 투쟁적 노동운동이 더는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한 데 기인한다. 새로운 사회 경제 여건하에서 노동운동, 노사관계가 ‘새로운 노선’을 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의 소모적이고 투쟁지향적인 노동운동으로 외국기업이 발길을 돌리거나 한국을 떠나는 마당에 노동계의 변화는 노동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일본의 노사관계가 전환점을 맞게 된 계기는 1970년대 초 제1차 오일쇼크다. 1974년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20%를 넘고 춘투에서 32.9%의 임금인상을 기록하자 당시 일본경제인연합회는 위기감을 느끼고 임금인상과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을 단절하기 위해 실질 국민경제 생산성증가율을 기준으로 1975년 춘투의 임금인상률을 15% 이내로 억제하는 가이드라인을 설정했다. 금속노협(IMF-JC) 등의 노조가 적극 호응해 임금인상과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을 단절했다.
임금인상률은 1974년 32.9%에서 1976년에 8.8%로 급락했고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1975년 10.4%, 1976년 9.5%로 억제됐다. 경제성장과 고용이 함께 증가세로 반전되어 일본은 선진국 중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오일쇼크에 의한 스태그플레이션을 탈출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 특히 철강노련은 일본경제 전반과 임금인상 간의 관계를 중시하는 ‘경제정합성론’을 제창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GM을 제치고 세계 1위로 등극할 예정인 일본 도요타자동차 노조는 순익이 1조 엔을 넘음에도 ‘기업의 지속적인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베이스업(기본급) 인상을 포기하면서 고용안정을 도모했다. 도요타 노조와 인식을 같이하는 노조가 일본에 많이 있는 한 일본의 기업경쟁력 및 국가경쟁력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임금인상 없는 근무시간 연장을 받아들이는 추세다.
국내 노동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 지금 기업은 무한경쟁에 내몰려 있다. 투쟁 위주의 노사관계를 탈피하여 협력적 노사관계로 나아가지 않으면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전환과 실천이 어느 때보다 요청된다. ‘사람과 돈과 공장’이 한국을 떠나는 실정을 고려할 때 노조는 책임 있는 경제주체, 책임 있는 경영주체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노동조합 ‘덕분에’ 기업이 강해지고 국가경쟁력이 튼실해지기를 기대한다.
김정한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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