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홍사 회장 “공공개발이 땅값 부채질… 전국 투기판”

  • 입력 2006년 9월 27일 02시 55분


“공공부문 개발계획의 남발이 오히려 전국의 땅값을 들썩이게 하고 전국을 투기판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권홍사(61) 대한건설협회장은 26일 본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표심(票心)만 의식해 행정중심복합도시, 기업도시, 혁신도시, 뉴타운 개발 등의 계획을 쏟아내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권 회장은 공공개발 방식과 관련해 싱가포르와 한국의 차이를 예로 들었다.

“싱가포르는 개발계획을 발표하기 전에 국가가 채권을 발행해 조용히 해당 토지를 사들여 10년 정도 묵혀둡니다. 나중에 개발을 할 때도 국가는 땅값에 대해서는 채권금리 정도만 부담하면 됩니다.”

반면 한국은 구체적인 계획을 확정하기도 전에 개발 사실을 대대적으로 발표해 땅값만 잔뜩 올려놓고, 막대한 토지보상비는 결국 국민의 세금 부담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정부와 지자체는 4153만 평의 땅을 공공용지로 취득하면서 15조1426억 원을 토지보상비로 집행했다. 2004년(4717만 평, 14조583억 원)에 비해 땅 면적은 줄었는데도 보상액은 늘었다.

부산지역 중견건설업체인 반도건설 회장이기도 한 권 회장은 지방 건설사들의 위기가 심상찮은 수준이라고 걱정했다.

“내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지방 건설시장의 불씨가 꺼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이면 지방 건설사 10곳 중 3곳꼴로 문을 닫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반도건설이 있는 부산만 봐도 정관신도시에서 분양한 아파트 계약률이 10%에도 못 미치고 1억 원 이상의 공사를 따낸 건설사가 700여 곳 중 200곳도 안 된다고 소개했다.

권 회장은 지방 건설사들이 고전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수도권 일부 지역의 집값을 잡기 위해 지방에도 똑같은 규제를 적용한 정부의 규제 일변도의 ‘정책 실패’ 때문으로 봤다.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힘센 어른이 유치원생을 때리는 격입니다.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愚)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규제를 합리적으로 완화해 ‘성숙된 어른’의 모습을 보여 줘야 합니다.”

그는 1가구 2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세나 투기지역 대출규제 등을 지방에도 똑같이 적용한 데다 시장원리에 따라 공급을 확대해 안정시켜야 하는 서울 강남지역 집값도 용적률, 재건축 규제 등에 초점을 맞춘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의 대형 건설사 대표가 주로 회장을 맡아 온 관행을 깨고 지난해 2월 제23대 건설협회장으로 취임한 권 회장은 평소 소신 있는 발언으로 ‘건설업계의 미스터 쓴소리’로 통한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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