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원-엔 환율이 급격히 하락(원화 가치 상승)하면서 현대차그룹에서 생산하는 자동차의 가격경쟁력이 일본차에 비해 크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요타는 미국시장에서 벌써부터 소형차인 야리스를 현대 베르나나 기아 프라이드보다 더 싼 값에 팔고 있습니다. 원-엔 환율이 100엔당 700원대까지 떨어지면 한국차와 일본차의 가격이 역전될 가능성도 있어요. 더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 100엔당 800원도 무너지나
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장중 한때 100엔당 800원이 무너지는 등 최근 원-엔 환율이 연일 급락하면서 국내 기업의 수익성 악화와 전반적인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본보 10월 3일자 1면 참조
▶‘엔低’ 턱밑까지 파고든다…100엔=800원 장중 붕괴
197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경기 순환 과정을 돌이켜 보면 엔화에 대해 원화가 약세일 때 우리 경제가 호황을 누린 반면 원화가 상대적으로 강세일 때는 불황을 겪은 적이 많았다.
특히 현재 경제 상황이 경상수지가 급속도로 악화되는 등 각종 경제지표에 ‘빨간 불’이 켜졌던 외환위기 직전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자칫하면 ‘경제 위기’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 “과거를 보면 미래가 보인다”
1970년대부터 외환위기 때까지 한국경제의 경기 순환 흐름을 보면 환율 변수가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해외시장에서 한국과 일본 제품이 경쟁하는 구조 때문에 원화와 엔화의 상관관계는 매우 높은 편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이 기간 경기확장기는 6차례. 이 6차례의 경기확장기에는 모두 엔화가 원화보다 상대적으로 강세였다. 한국은 엔고(高)의 혜택을 톡톡히 본 셈이다.
특히 이른바 ‘3저(低) 호황’을 누렸던 1985년 9월∼1988년 1월 중 미국 달러화에 대한 엔화 가치는 85.7%나 올랐다.
반면 달러화에 대한 원화 가치는 13.2% 오르는 데 그쳐 엔화가 원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세였다. 이 기간 한국은 높은 경제성장률과 증시 활황을 누렸다.
반면 6차례의 경기수축기에는 엔화가 원화보다 상대적으로 약세일 때가 많았다.
3저(低) 호황이 끝나고 경기가 내리막을 걷던 1988년 1월∼1989년 7월은 달러화에 대한 엔화 가치가 9.3% 떨어진 반면 원화 가치는 18.0% 상승했다. 이때는 성장률이 둔화되고 주가는 크게 하락했다.
외환위기가 오기 전 경기확장기였던 1993년 1월∼1996년 3월에도 대체로 원화가 엔화보다 상대적으로 약세였다.
그러나 1995년 6월부터는 원화가 강세로 돌아서 이후 1년 8개월간 월평균 원-엔 환율은 200원 가까이 떨어졌다. 이는 경상수지를 급격하게 악화시켜 외환위기의 한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연세대 김정식(경제학) 교수는 “현재 상황은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고 원-엔 환율 하락으로 경상수지가 악화되는 등 외환위기 직전과 비슷하다”며 “환율문제에 대해 정부가 개입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 환율 영향 과거보다는 감소했지만…
원-엔 환율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보다 줄어든 만큼 최근의 엔화 약세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국의 무역상대국이 중국 등으로 다양해진 데다 수출품의 품질경쟁력도 높아졌기 때문.
실제로 2004년부터 원-엔 환율이 급락하는 와중에도 한국의 수출 증가율은 2004년 31.0%, 지난해 12.2% 등 두 자릿수 행진을 이어갔다.
그러나 요즘 원-엔 환율의 하락 속도가 한국경제가 버티기 힘들 만큼 빠르다는 것이 문제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금처럼 원화가 고평가된 상황에서 원-엔 환율이 계속 하락하면 대외무역에 심각한 영향이 올 것”이라며 “특히 일본과 경쟁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의 수출이 타격을 받을 우려가 크다”고 전망했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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