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승호]기업인이 눈물 흘릴 때

  • 입력 2006년 10월 5일 03시 06분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기업들은 수천 %를 오르내리는 부채비율(자기자본 대비 부채총액) 때문에 ‘부실 재무구조’ ‘차입 경영’이라는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한국을 대표하는 18개 기업의 작년 말 현재 부채비율은 99.5%였다. 부채비율 200% 안팎인 IBM, GM 등 세계 주요 기업보다 낮은 수준에 이른 것이다. 이쯤 되면 ‘기업 재무구조 선진국’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보수적 경영으로 투자를 기피하는 것’이 기업 부채비율 하락의 한 원인이며, 투자 위축이 나라의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니 ‘부채 적은 경영’에 박수만 칠 일이 아니다. 쟁쟁한 기업들이 투자에 몸을 사리는 것은 “정책 방향을 종잡기 어렵고, 대기업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는 등 불투명성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게다가 국내 기업에 대한 외국자본의 경영권 위협이 두려워 기업인들이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기보다는 안전성 위주로 경영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얘기다.

▷그런 가운데 법무부는 이중(二重)대표소송제 시행, 회사 기회 유용 금지 등 기업이 반대하는 내용을 많이 담은 상법 개정안을 어제 입법예고했다. 반면 경영권 보호장치 등 기업이 해 달라는 것들은 쏙 빠졌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규제를 만들 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기업하기 좋은 여건 만들기’는 아니다. 기업을 도와주기는커녕 발목 잡는 정부인 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규제가 말 그대로 ‘갈수록 태산’이다.

▷감사원 기업불편신고센터의 최상철 감사관은 규제와 행정편의주의를 고발하는 ‘기업하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릴 때’라는 책을 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공무원들의 소극적인 대(對)기업 업무 처리는 일종의 부패행위로 봐야 한다.” “말로는 ‘기업이 국가’라고 외치면서 규제와 단속으로 기업을 괴롭히면 나라꼴이 뭐가 되겠는가.” “번듯한 일자리를 정부가 창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 민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민간에 넘겨야 한다.” 대통령과 경제부총리한테서 듣고 싶은 얘기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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