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미국의 성장 둔화가 가시화되면서 아시아 통화들이 대부분 미 달러화에 대해 절상됐다. 달러당 원화 환율은 올해 초에 1000원을 웃돌았으나 현재는 950원을 밑돌고 있다. 문제는 원화의 강세 폭이 경쟁국들에 비해 높다는 점이다. 달러화에 대한 위안화와 대만달러화의 환율이 올해 들어 약 2%, 싱가포르달러화가 약 5% 절상된 데 비해 원화는 약 7% 절상됐다.
주목할 만한 점은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보이며 경기가 회복되고 있는 일본의 엔화가 올해 들어 미 달러화에 대해 소폭 절하되었다는 사실이다. 엔화는 5월 이후 미 달러화에 대해 약세를 보이면서 100엔당 원화 환율이 외환위기 이전의 800원 수준으로 낮아졌다. 현재 엔화는 실질실효환율 기준으로 1985년 플라자 합의 수준까지 가치가 떨어졌다.
이처럼 엔저와 원고가 심화되면 일본 대만 중국 등과 경쟁해야 하는 수출기업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가격 경쟁력 우위가 크지 않은 전자 섬유제품 등을 수출하는 기업들은 원화 가치 상승으로 기업의 이윤이 줄어들고 경영난이 심화된다. 실제로 미국과 유로시장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수출 비중이 엔저 효과에 힘입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일본의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엔화가 약세를 보이는 것은 환율이 자본의 흐름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저금리로 자본이 빠져나가는 데다가 일본으로의 주식 투자 자금 유입도 크게 줄어들었다. 또한 미국과 일본의 금리 격차로 저금리 통화에 대한 위험을 회피하려는 투자가들의 행동과 국제금융시장에서 준비자산으로서의 엔화의 위상 추락 등을 엔저의 배경으로 들 수 있다.
이 같은 구조적 요인으로 엔화의 과소평가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엔저로 시장을 잃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압력으로 엔화가 장기적으로 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나 현재의 엔저 현상이 조기에 시정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당면한 엔저-원고의 파고를 헤쳐 나가려면 지금부터 대비책을 마련해서 성장 동력이 약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 경제는 현재 수출에 의존한 성장을 하고 있다. 내수가 부진한 상황에서 수출마저 부진하면 성장 동력의 약화가 불가피하므로 수출과 내수의 양극화 해소에 주력하기보다는 생산성 향상을 통해 수출 경쟁력을 높여야 할 것이다. 생산성 향상이 단기간에 이루어지기 어려우므로 임금 조정을 통한 가격경쟁력 향상을 도모하고, 국내 원-엔 거래를 활성화하여 원화 환율의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올해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8월까지 13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였으며, 내년에도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이렇게 경상수지가 적자를 보이게 되면 원화 강세가 주춤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엔저의 경우처럼 원화 환율이 자본수지를 반영하게 되면 경상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달러 약세로 원화 환율이 순식간에 800원대로 떨어진다. 반대로 북한 핵 문제 등 지정학적 요인으로 원화가 약세를 보일 수도 있다. 내년은 대외 여건 변화에 따른 우리의 수출경쟁력 및 성장잠재력 유지가 정책적 최대 관심사가 돼야 한다.
박원암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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