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장은 지난달 14일 미국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수여하는 '밴플리트상'을 받기 위해 출국한 후 경영진과 함께 현지 사업장을 방문하거나 사업 파트너와 만난 자리를 통해 '창조경영'을 설파해 왔다.
지금까지 공개된 이 회장의 방문지는 △지난달 19일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워너센터 △같은달 30일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구단 첼시의 런던 홈구장 △8일 두바이의 세계 최고층 빌딩 '버즈 두바이' 공사현장 등이다.
이 회장은 가는 곳마다 동행한 삼성 경영진에게 말하는 형식으로 "세계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남다른 발상과 최고의 인재에 기반한 '창조적 경영'이 필수적"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두바이에서는 "확고한 미래의 비전을 가진 셰이크 모하메드 두바이 국왕이 두바이를 세계가 주목하는 발전모델로 변화시켰듯이 우리도 각 사의 미래 성장 잠재력 향상을 위한 창조경영에 힘써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런던에서는 "첼시의 인기가 높은 비결은 각 포지션별 세계 최고의 선수 확보와 훌륭한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 구단의 아낌없는 지원 등 3박자가 잘 갖춰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기업에도 '프리미어식 창조적 경영'을 적용해 우수인력을 확보하고 양성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세계 최첨단 제품들이 경쟁하는 뉴욕에서는 "이곳의 최고급 소비자로부터 인정받아야 진정한 세계 최고 제품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한국 독자기술로 '통신 종주국'이라 할 미국에 진출한 와이브로 △40나노 32기가 낸드플래시 개발을 가능케 한 CTF(Charge Trap Flash) 기술 △세계 LCD TV 시장을 선도하는 보르도 TV 등을 '창조경영'의 구체적 결과물로 제시했다.
이와 같은 이 회장의 행보는 '세계 일류' 이상의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제품을 잘 만드는 수준을 뛰어넘어 마케팅과 연구개발(R&D), 디자인 등 모든 방면에 걸쳐 창조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면밀한 의도의 결과로 풀이된다.
삼성 관계자들은 이 회장의 '창조경영론'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대표되는 1993년의 '신경영 선언' 이후 그룹 경영전반에 또다시 큰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보고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삼성 관계자는 "그룹차원의 태스크포스가 구성돼 '신경영' 구상을 구체화했던 1993년 당시와는 달리 지금은 계열사별 독립경영이 정착된 만큼 '창조경영'을 현실적으로 뒷받침하는 주체도 각 계열사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측은 또 이 회장의 해외체류 기간 중 더 이상 대외적으로 공개되는 일정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향후 이번 해외순방을 통해 제시한 '창조경영'의 화두를 현실화하기 위한 숙고의 시간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국내가 될 지, 아니면 예전에 종종 그랬던 것과 같이 일본 등 해외가 될 지에 대해 삼성 관계자들은 극도로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
이 회장은 두바이 방문에 동행했던 가족들을 먼저 귀국시킨 뒤 일본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일본에서 향후 사업구상에 도움이 될 각계 전문가들과 사업 파트너, 지인들을 만날 계획인 것으로 보이지만 삼성측은 "두바이 이후의 일정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회장 자신이 "추석을 전후해 귀국할 것"이라고 밝힌 만큼 이르면 이번 주, 늦어도 이달 안에는 귀국하리라는 것이 그룹 안팎의 대체적인 관측이며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에도 이 같은 일정이 사전 통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귀국 후 주요 계열사의 내년도 사업계획과 신수종사업 진출전략, 인재확보 현황 등을 점검하며 '창조경영'의 메시지가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 지를 평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평가의 결과는 통상 연초에 있게 되는 삼성 사장단 인사에 반영될 것이 분명하다. 재계에서는 지난 수년간 삼성 주요 계열사의 사장단에 이동이 거의 없었다는 점과 맞물려 내년 초 인사는 큰 폭의 물갈이가 이뤄질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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