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판 위의 CEO들

  • 입력 2006년 10월 17일 03시 00분


호남석유화학은 지난해 보상한도액 200억 원인 임원배상책임보험에 가입했다.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된 증권집단소송제도로 임원들이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올해 연간보험료가 1억 원 정도지만 임원들을 보호하는 돈 치고는 적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증권집단소송제도에 따른 손해배상 가능성은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직무수행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위험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6일 ‘CEO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기업 CEO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 범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CEO가 회사의 모든 활동에 대해 포괄적인 관리책임을 지고 있고, 합리적인 경영 판단에 대해서도 사후에 문제 발생 시 손해배상책임을 추궁당할 수 있어 글로벌 경쟁시대에 전략경영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종업원의 불법 행위를 이유로 법인이나 CEO에게 연대책임을 부과하는 이른바 ‘양벌조항’을 둔 법률은 근로기준법, 건축법, 증권거래법, 소비자보호법, 환경범죄단속특별법,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등 300여 개에 이른다.

CEO들이 자신들을 ‘교도소 담장 위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것도 이처럼 냉혹한 현실을 빗댄 것이다. 자칫하면 구속 기소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경상 대한상의 기업정책팀장은 “한국에서 CEO의 자리는 회사 채무와 종업원의 불법 행위에 대해 연대책임을 져야 하고, 언제 어떻게 사후책임을 추궁당할지 모르는 매우 위험한 자리”라며 “이런 짐을 벗게 해 기업인들이 본연의 경쟁력 제고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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