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2인자인 이학수(부회장) 전략기획실장은 18일 일본에 체류 중인 이건희 회장을 만나기 위해 1박 2일 일정으로 비행기에 오른다. 해외를 순방하는 이 회장이 조만간 귀국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간을 다툴 만큼 중요한 보고 사안이 있다는 의미다.
이 회장 부재(不在)시 삼성의 사령탑 역할을 대행하는 이 실장의 갑작스러운 ‘일본행(行)’은 그룹의 내년 경영계획 수립과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은 보통 10월부터 이듬해 사업계획을 짜는데 올해는 북한의 핵 실험 사태 등으로 경영 외적 환경의 불확실성과 리스크(위험)가 특히 높아져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외부 경영환경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사업전략 수립에 총수의 판단과 결단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북핵 위기, 원화가치 상승(원화환율 하락), 경제성장률 둔화 등 잇따라 몰려오는 악재로 많은 기업이 내년 경영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삼성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대기업은 매년 10월부터 다음 해 경영계획을 짜지만 올해는 적지 않은 기업이 밑그림조차 그리지 못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일단 삼성경제연구소의 거시경제 분석 자료를 기반으로 다음 달까지 그룹 전체의 사업계획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의 한 임원은 “북한의 2차 핵실험 등 추가적인 모든 변수까지 감안해 경영전략을 짜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위기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일단 최대한 보수적으로 사업전략을 세울 방침이다. 주우식 삼성전자 전무는 “달러당 원화 환율이 900원까지 떨어지는 것을 전제로 계획을 짜고 있다”고 밝혔다.
○ 현대·기아차-LG-SK그룹 등 변수 많아 난항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수출에 의존하는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북핵 문제와 환율변동으로 계획 수립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동진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최근 본보 기자에게 “경영계획 짜기가 과거 어느 해보다 어려운 것 같다”며 “수익성 악화에 대한 대책 마련에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원-달러 환율이 10원만 떨어져도 순이익이 1000억 원 가까이 줄기 때문에 정몽구 회장 주재 수출전략회의와 경영전략회의 등을 통해 대응책을 찾고 있다.
LG그룹도 내년 사업전략을 짜는 데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LG전자는 해외 투자자 동향, 환율, 유가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전담팀을 구성하고 경영계획을 세우는 과정에 이 팀의 보고를 수시로 반영하고 있다. LG화학도 원유 가격의 변동을 주시하며 사업계획을 짜고 있다.
SK그룹 역시 난항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최태원 회장은 내년 경영계획 수립에 앞서 북핵 사태에 대한 대책 마련을 지시했고 SK경영경제연구소도 관련 보고서를 작성해 임원들에게 보고했다.
내수 중심의 유통업체들은 소비 심리 위축을 우려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한채양 경영관리팀장은 “북핵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소비 심리가 다소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며 “여러 가지 가능성을 감안해 영업전략을 짤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부 환경에 대응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들은 발등에 원화가치 상승에 따른 가격경쟁력 저하와 내수 시장 침체 우려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장지종 상근부회장은 “기업들은 고환율, 고금리, 고유가 등 ‘3고(高) 현상’이 내년에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비용 상승을 감안해 경영계획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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