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시중은행 지점장이라고 치자. 이런 사람에게 단돈 10만 원이라도 빌려줄 수 있을까.
조창근(43) 씨는 10여 년 전 사업을 하다 실패해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새 출발을 하려 해도 돈이 없었다. 은행? 그건 꿈도 꾸지 못했다. 그에게 지난해 구원의 손길이 찾아왔다. 한 ‘빈민은행’이 창업자금을 빌려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전 담보도 없고 빚도 1000만 원이나 있는데요?”
“당신이 열심히 살려는 의지만 있으면 그것이 담보입니다.”
조 씨는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예전에 가전회사에서 일할 때 배운 지식을 동원해 전자제품 수리점을 운영하겠다고 했다. ‘신나는조합’이라는 이름의 빈민은행은 그를 믿고 1000만 원을 대출해 줬다. 요즘 매출은 월 200만 원. 조금 빠듯하지만 ‘내 힘으로 살아간다’는 생각에 조 씨는 행복하다.
○ 빈민들의 금고
한국에도 ‘신나는조합’과 사회연대은행이라는 빈민은행이 있다. 두 은행은 빈곤층에 연 2∼4%의 저금리로 창업 자금을 빌려 주고 있다.
놀라운 것은 90%가 넘는 대출 상환율. 이들 은행은 가난하다고 해서 무조건 돈을 빌려 주지 않는다.
오히려 대출 신청자의 사업 타당성을 점검하는 등 철저한 사전 심사를 한다. ‘삶에 대한 의지’를 따지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평판도 듣는다.
이런 까다로운 심사 때문에 실제 대출을 받는 것은 쉽지 않다. 사회연대은행의 대출 경쟁률은 7 대 1에 이른다.
하지만 한번 대출이 나가면 정기적으로 경영 컨설팅을 제공하는 등 사후 지원도 따른다.
○ 기금 부족에 시달려
일반 시중은행에도 간혹 생계형 대출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나 담보를 요구하고, 대출이 된다 하더라도 고금리다. 일정 소득 수준 ‘이하’를 대출 기준으로 설정한 빈민은행과는 기본 시각부터가 다르다.
담보와 보증이 대출의 조건인 한국에서 빈민 금융의 설 땅은 좁다.
설립 이후 이들 두 은행이 빈민들에게 대출해 준 돈은 겨우 80여억 원. ‘신나는조합’의 경우 성금을 꼬박꼬박 납부하는 개인 회원은 고작 14명이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한국의 빈민은행 현황 사회연대은행 신나는조합 설립 2002년 12월 2000년 6월 형태 사단법인 사회복지단체 대출자 수 500여 명 300여 명 평균 상환율 90% 96% 금리 연 2% 연 2∼4% 대출 한도 1인당 2000만 원(공동체 기준 5000만 원) 1인당 1000만 원(공동체 기준 5000만 원) 대출 자격 보건복지부 기준 최저생계비 120% 이내의 저소득층 월수입 150만 원 이하(4인 가족 기준) 대출자 수는 설립 후부터 올해 9월 말까지 누적치. 자료: 사회연대은행, 신나는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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