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유누스처럼…한국서도 싹트는 ‘빈민은행’

  • 입력 2006년 10월 18일 03시 00분


지난달 서울 중구 충무로2가 사회연대은행 교육장에서 대출 신청자들을 위한 사전교육이 있었다. 빈민은행들은 까다로운 사전 심사와 철저한 사후 관리로 대출 상환율을 90%까지 끌어올렸다. 사진 제공 사회연대은행
지난달 서울 중구 충무로2가 사회연대은행 교육장에서 대출 신청자들을 위한 사전교육이 있었다. 빈민은행들은 까다로운 사전 심사와 철저한 사후 관리로 대출 상환율을 90%까지 끌어올렸다. 사진 제공 사회연대은행
‘40대 신용불량자, 일정한 직업 없음, 노숙자, 알코올 의존중….’

당신이 시중은행 지점장이라고 치자. 이런 사람에게 단돈 10만 원이라도 빌려줄 수 있을까.

조창근(43) 씨는 10여 년 전 사업을 하다 실패해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새 출발을 하려 해도 돈이 없었다. 은행? 그건 꿈도 꾸지 못했다. 그에게 지난해 구원의 손길이 찾아왔다. 한 ‘빈민은행’이 창업자금을 빌려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전 담보도 없고 빚도 1000만 원이나 있는데요?”

“당신이 열심히 살려는 의지만 있으면 그것이 담보입니다.”

조 씨는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예전에 가전회사에서 일할 때 배운 지식을 동원해 전자제품 수리점을 운영하겠다고 했다. ‘신나는조합’이라는 이름의 빈민은행은 그를 믿고 1000만 원을 대출해 줬다. 요즘 매출은 월 200만 원. 조금 빠듯하지만 ‘내 힘으로 살아간다’는 생각에 조 씨는 행복하다.

○ 빈민들의 금고

13일 방글라데시의 빈곤퇴치 운동가인 무하마드 유누스(사진) 씨와 그가 창설한 그라민은행이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빈민은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도 ‘신나는조합’과 사회연대은행이라는 빈민은행이 있다. 두 은행은 빈곤층에 연 2∼4%의 저금리로 창업 자금을 빌려 주고 있다.

놀라운 것은 90%가 넘는 대출 상환율. 이들 은행은 가난하다고 해서 무조건 돈을 빌려 주지 않는다.

오히려 대출 신청자의 사업 타당성을 점검하는 등 철저한 사전 심사를 한다. ‘삶에 대한 의지’를 따지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평판도 듣는다.

이런 까다로운 심사 때문에 실제 대출을 받는 것은 쉽지 않다. 사회연대은행의 대출 경쟁률은 7 대 1에 이른다.

하지만 한번 대출이 나가면 정기적으로 경영 컨설팅을 제공하는 등 사후 지원도 따른다.

○ 기금 부족에 시달려

일반 시중은행에도 간혹 생계형 대출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나 담보를 요구하고, 대출이 된다 하더라도 고금리다. 일정 소득 수준 ‘이하’를 대출 기준으로 설정한 빈민은행과는 기본 시각부터가 다르다.

담보와 보증이 대출의 조건인 한국에서 빈민 금융의 설 땅은 좁다.

설립 이후 이들 두 은행이 빈민들에게 대출해 준 돈은 겨우 80여억 원. ‘신나는조합’의 경우 성금을 꼬박꼬박 납부하는 개인 회원은 고작 14명이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한국의 빈민은행 현황

사회연대은행신나는조합
설립2002년 12월2000년 6월
형태사단법인사회복지단체
대출자 수500여 명300여 명
평균 상환율90%96%
금리연 2%연 2∼4%
대출 한도1인당 2000만 원(공동체 기준 5000만 원)1인당 1000만 원(공동체 기준 5000만 원)
대출 자격보건복지부 기준 최저생계비 120% 이내의 저소득층월수입 150만 원 이하(4인 가족 기준)
대출자 수는 설립 후부터 올해 9월 말까지 누적치. 자료: 사회연대은행, 신나는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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