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립발레단의 ‘카르멘’을 관람한 정 씨 가족은 강남역 근처 한식집에서 저녁을 먹고 도심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튿날 오전 정 씨가 딸과 함께 경복궁을 거니는 동안 아내는 백화점에서 쇼핑을 했다.
오후 4시 서울역에서 만난 정 씨 가족은 KTX를 타고 부산으로 돌아갔다.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서울을 찾는 정 씨 가족의 이틀간 나들이 비용은 보통 100만 원을 넘어선다.》
의료 교육 유통 문화 등 ‘고급 소비’의 서울 집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가 ‘국가 균형발전’을 꾀한다며 행정중심복합도시, 기업도시, 혁신도시를 세우고 있지만 국민의 소비행태는 반대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 “잘한다” 소문나면 지방 환자 몰려
이 병원 이모 원장은 “인터넷을 통해 ‘잘한다’는 소식이 돌면 지역을 가리지 않고 환자들이 찾아온다”며 “지방 환자를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해 오피스텔을 임대하는 병원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외래 환자 중 수도권 외의 지방 환자 비중이 2002년 21.4%에서 지난해 27.0%로 높아졌다.
백승운 삼성서울병원 외래부장은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서울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면서 “암 같은 중병에 걸린 환자는 대부분 서울로 온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 백화점-학원 수요 꾸준히 늘어
롯데백화점 홍보팀의 임형욱 과장은 “지방 고객들의 비중이 계속 늘 뿐 아니라 지방 고객 1명이 쓰는 금액도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 있는 입시학원인 대성학원은 다음 달 16일 수능 이후 몰려올 지방 학생들에 대비해 논술시험 준비반을 개설할 계획이다.
이영덕 대성학원 평가이사는 “지방에서는 체계적인 논술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며 “지난해 1500명 정도의 논술강의 수강생 중 지방 학생은 3, 4년 전보다 갑절로 늘어난 300∼400명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방 학생 1명이 논술강의를 듣기 위해 한 달 남짓 서울에 머무는 동안 쓰는 돈은 사설 기숙사 비용 90만 원, 학원비 50만 원 등 평균 200만 원 정도다.
○ KTX 고속도로 확충이 체감 거리 줄여
KTX, 천안 지역까지 연장된 수도권 전철, 영동고속도로 확충 등 교통망이 대폭 개선돼 서울과 지방의 ‘체감 거리’가 대폭 줄어든 것도 한몫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균형발전 전략’도 이런 상황을 바꾸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최근 혁신도시로 이전할 예정인 한 공공기관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은밀하게’ 마케팅 조사를 벌였던 A건설업체는 이 지역에 30평형대 이상 아파트는 짓지 않기로 결론을 냈다.
이 건설업체 관계자는 “대부분의 조사 대상자는 가족은 서울에 두고 혼자 내려갈 계획이었다”며 “주택 구입을 포함해 소비의 중심을 지방으로 옮기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동시다발적인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 지방 개발 방식으로 서울의 집중 현상을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하는 전문가가 많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제대로 된 한두 지역에 역량을 집중해 지방에서도 만족스러운 경제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성공 사례를 보여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삼성서울병원 외래 환자의 지역별 분포 추이 (단위: 명, %)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수도권 8만8382(78.6) 9만5275(77.5) 9만4096(76.2) 8만5796(73.0) 비수도권 2만3993(21.4) 2만7690(22.5) 2만9399(23.8) 3만1768(27.0) 전체 11만2375 12만2965 12만3495 11만7564 괄호 안은 전체 환자 대비 비중. 자료: 삼성서울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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