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말로만 규제 완화’… 건의 94건중 13건만 “수용”

  • 입력 2006년 11월 7일 03시 01분


“분명히 수용한다고 했는데….”

대한상공회의소 직원 A 씨는 정부가 올해 6월 보낸 ‘건의 처리 현황’을 보여 주며 고개를 저었다.

생활소음 규제기준 중 ‘낮 시간’의 범위를 오전 8시∼오후 6시에서 오전 7시∼오후 6시로 바꿔 공사 시간을 늘려 달라는 재계의 건의에 대해 정부가 수용 의사를 밝혔지만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당시 정부는 “관련 부처 및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공청회 등을 거쳐 향후 시행규칙 개정 시 반영하겠다”고 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1∼6월)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5단체로부터 94건의 규제완화 건의를 받아 13.8%인 13건을 수용했다고 밝혔지만 현재 이 중 상당수는 그대로 남아 있다. 수도권 공장 이전 등 재계의 핵심 건의 사항에 대해서는 대부분 ‘수용 곤란’ 또는 ‘중장기 검토’로 돌리고 있어 정부의 규제 완화 의지가 의심스럽다는 지적이다.

○ 말로만 수용?

재정경제부가 최근 국무조정실로부터 받아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제출한 ‘경제 5단체 건의 과제 처리 현황’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 정부가접수한 94건의 건의 가운데 수용은 13건에 그쳤다.

△25건은 수용 곤란 △8건은 중장기 과제 검토 △16건은 일부 수용 △27건은 별도 검토로 분류했고 나머지 5건은 이미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거나 조정 중인 것이었다.

정부가 수용하겠다고 한 13건은 대부분 ‘수용 곤란’으로 분류된 건의보다 규제의 강도가 약한 것들. 그러나 이마저 절반가량은 그대로 남아 있다.

실제로 “일반 보일러와 발전시설의 먼지배출 허용기준을 같게 해 달라”는 건의에 대해 정부는 일단 수용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지금까지 ‘향후 법령 개정 시 반영하겠다’에서 나아간 게 없다.

“경기 화성시에 관리지역으로 지정된 공장 밀집지역을 공업지역으로 변경해 달라”는 요청에는 중앙정부의 소관도 아니면서 수용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관리지역을 공업지역으로 바꾸는 것은 시도지사가 결정할 문제다.

○ 핵심 규제는 그대로

기업들이 투자 확대 등을 위해 건의한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자연보전권역 내 3만 m² 이상의 공업용지 조성사업을 제한하는 규정을 완화해 달라”는 건의에는 ‘수도권 과밀 촉진 우려’라는 전형적인 논리로 일축했다.

“충남 천안시 내의 한 준농림지역이 최근 자연녹지지역으로 변경돼 기업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으니 용도지역을 변경해 달라”는 요청에는 “도시관리계획 변경은 시도지사의 결정 사항”이라며 곤란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화성시에서 제기된 똑같은 건의에는 수용하겠다고 약속해 중구난방식 규제 행정의 일단을 드러내기도 했다.

‘재건축 결의요건 완화’ 등 부동산정책과 관련된 대부분의 건의 사항은 ‘수용 곤란’ 등으로 분류됐다.

익명을 요구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 간부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재계 핵심 이슈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보나마나 뻔하다”고 말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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