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규(사진)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이날 오전 열린 부동산 정책 관계장관회의 결과를 설명하다가 갑자기 굳은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4건의 수도권 공장 증설을 놓고 정부의 인허가가 지연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현재 태스크포스(TF)와 민간 전문가 그룹이 실사(實査) 등 몇 가지 추가 작업을 하고 있다. 11월 중에는 인허가 여부를 확정할 수 있을 것이다.”
권 부총리는 하이닉스반도체의 경기 이천시 공장 증설 허가 문제가 늦춰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해당 기업이 구체적인 투자 및 재원 조달 계획을 정부에 공식적으로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인허가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지, 재경부가 수도권 규제를 완화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권 부총리가 기자들이 묻지도 않은 사안에 대해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해명을 하는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이를 지켜본 상당수 재경부 관료는 “권 부총리가 ‘코드 경제’, ‘말로만 기업 규제 완화’ 식의 말이 흘러나오는 것에 적극 대응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풀이했다. 이러다간 시장의 신뢰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일부 작용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주도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대안과 관련해 권 부총리는 주변의 예상보다 강도 높게 공정위에 맞서고 있다.
권 부총리는 공정위의 출총제 대안이 나오기 전만 해도 “(권오승 공정위원장이랑) 성도 같고 항렬도 같은데 잘되겠지”(10월 19일 기자간담회)라며 다소 느긋한 편이었다.
그러나 공정위가 재계의 요청과 항변에도 불구하고 순환출자 금지와 출총제 부분 유지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오자 “기업 부담이 지금보다 완화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받아들여져야 한다”며 공정위를 정면으로 공박하는 발언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권 부총리의 강경한 태도에는 7월 취임 이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공정위의 출총제 드라이브에 밀리면 정부 경제팀 수장(首長)으로서 리더십 발휘가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경부의 한 간부는 “늦은 감이 있지만 권 부총리가 이제라도 적극적이고 기개 있게 경제가 잘되는 쪽으로 중심을 잡고 적극 뛰어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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