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정책 3人 문책 “민란 수준…더 버틸수 없다” 백기

  • 입력 2006년 11월 15일 03시 00분


“부동산 문제는 북한 핵 문제보다 더 절박했다.”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과 이백만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정문수 경제보좌관이 14일 사의를 표명한 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같이 토로했다.

지난달 추 장관의 즉흥적인 신도시 건설 발표 이후 수도권 일대 집값은 ‘고삐 풀린 말’처럼 뛰기 시작했다. 이백만 홍보수석이 10일 청와대브리핑에 올린 “지금 집 사면 낭패” “부동산 세력이 문제”라는 글은 부동산 문제에 짓눌린 서민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여론에 떠밀린 인사를 거부해 왔던 노무현 대통령도 더는 성난 민심의 파도에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민란(民亂) 수준의 민심 이반”=현 정부 출범 초 이라크 파병 문제를 비롯해 북핵 사태 등에 대해선 찬반 양론이 첨예하게 갈렸다. 노 대통령이 비판 여론에 개의치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나머지 여론에 실린 지지층의 지원사격 덕분이었다. 특유의 ‘편 가르기’ 전술이 먹혀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부동산 문제는 달랐다. 시중 여론은 온통 비난 일색이었다. “민심 이반이 ‘부동산 민란’ 수준”이라는 심각한 경고음이 각종 채널을 통해 청와대에 속속 보고됐다. 심지어 여당인 열린우리당조차 “더는 청와대에 끌려 다니지 않을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여론에 개의치 않고 버티는 노 대통령의 고집스러운 ‘오기인사’도 표적이 됐다. 결국 노 대통령은 ‘버티기 인사’를 포기하고 등 돌린 민심을 달랠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추 장관과 이 수석 등이 사의 표명을 했지만 사실상 문책성 경질 인사인 것은 이 때문이다.

청와대 참모진 교체가 이번처럼 문책 성격을 띤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해 1월 이기준 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인사 파문 직후 인사검증 책임을 진 박정규 민정수석, 정찬용 인사수석비서관이 동반 퇴진한 이후 처음이다.

이번 인사로 노 대통령이 임기 말 여론을 수렴하는 새로운 국정운영 스타일을 보일는지도 관심사다. 그동안 극도로 거부감을 보였던 ‘문책성 개각’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이번 인사가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의 서곡’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이날 사의를 표명한 세 사람의 후임 인선에서도 코드인사나 돌려막기식 인사를 고집할 것이라는 예측도 없지 않다.

▽문책인사 막전 막후=노 대통령은 지난달 추 장관의 신도시 발언 파문 직후 제기된 추 장관 교체 요구를 일축했다. 연말이나 내년 초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 당에 복귀할 때 자연스럽게 추 장관을 교체하려 했던 것.

그러나 ‘지금 집 사면 낭패’라는 이 수석의 청와대브리핑 글이 10일 발표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이 수석의 글이 실린 인터넷 사이트엔 10일 하루에만 수천 건의 비난 댓글이 달릴 정도로 민심의 반발은 거셌다.

특히 이 수석이 몇 년 만에 5억 원대에서 20억 원대의 강남 아파트로 ‘갈아타기’를 한 사실이 보도된 13일, 청와대 핵심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좀 심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여기에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이 홍보수석 시절인 2003년 10월 ‘10·29 부동산대책’을 발표했을 때 강남권 아파트 입주 계약을 한 사실이 14일 본보 보도로 알려지자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부동산 파문이 청와대 깊숙이 번지는 상황을 차단하기 위해 부동산정책 책임자인 추 장관 및 정 보좌관과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은 이 수석을 인책하기로 결정하고 서둘러 사의를 표명토록 했다는 것이 후문이다.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