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호모 파베르(Homo faber·도구적 인간)인 인간의 발명 의지는 여전하다. 자동차 분야만 봐도 첨단을 달리는 장치가 지금도 계속 개발되고 있으니 말이다.
최근 자동차 분야에서는 차체를 안정시키는 전자식 주행안전장치(ESP)를 장착하는 차량이 늘고 있다. 차체가 미끄러지는 현상(skidding)을 예방해 주는 장치다. 이 장치를 처음 개발한 자동차부품업체 보쉬와 독일 자동차업계는 ESP라고 지칭하고, 현대자동차와 닛산 등은 차량자세제어장치(VDC)라고 부른다.
지난달 말 충남 서산에서는 일반인들이 현대자동차의 VDC를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왕복 2차로에서 속도가 느린 경운기를 추월하는 상황. VDC 장치를 껐을 때는 시속 70km에서 왼쪽으로 운전대를 꺾자 자동차가 미끄러지면서 사고로 이어지는 상황이 연출됐다. 그러나 VDC를 작동시키자 시험에 참가한 30명의 운전자 전원이 안전하게 추월을 해냈다.
VDC에는 운전자가 주행하려는 방향을 감지하는 조향각 센서와 실제 자동차의 주행 방향을 파악하는 회전율 감지센서가 있어 두 신호가 어긋나면 바퀴와 엔진출력이 자동으로 제어되도록 설계돼 있다. 겨울철 미끄러운 노면에서도 이 장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독일보험협회에 따르면 심각한 부상을 초래하는 사고의 25%는 자동차가 옆으로 미끄러지면서 발생한다. 또 사망 사고를 유발하는 교통사고의 60%도 자동차가 옆으로 미끄러져 측면 충돌을 함으로써 발생한다. ESP가 개발된 이유다.
ESP에는 바퀴잠김방지제동시스템(ABS)과 구동력제어시스템(TCS)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ESP 장치를 장착하면 별도의 ABS가 필요 없다.
사람의 인식 기능을 확장하는 장치도 속속 도입되고 있다. 야간 운전 때 시야를 확보해 주는 ‘나이트 비전(Night Vision)’이 대표적인 장비. 인간의 다리 기능을 강화시킨 자동차에 시력 좋은 눈이 더 달린 셈이다.
2005년 BMW가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선보인 이 장치는 야간 및 안개가 낀 열악한 환경에서 진행 방향에 있는 물체를 적외선 카메라로 감지해 실내에 장착된 모니터에 보여준다. 300m까지 감지할 수 있으며 사람이나 동물은 모니터에서 더 크고 선명하게 표시된다. 벤츠에도 비슷한 기능이 있다.
야간에 멀리 볼 수 있도록 상향등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하이빔 어시스트(High Beam Assist) 장치는 야간운전의 안전도를 높여준다. 반대편 차선과 가까운 전방에 자동차가 없으면 자동으로 상향등을 켰다가 차가 나타나면 전조등의 각도를 다시 낮춘다.
헤드업 디스플레이(Head-up Display)는 차량의 속도나 내비게이션의 방향표시 등 계기판의 정보를 앞 유리창에 보여주는 장치로 계기판을 보느라 전방의 위기상황을 놓칠 위험을 줄여준다.
자동차가 주변 환경을 인식해 스스로 안정성을 높이기도 한다. 닛산의 인피니티에 적용된 지능형 동력배분 시스템은 평상시에는 뒷바퀴에 100%의 구동력을 배분했다가 노면과 주행상황에 따라 앞바퀴에 0∼50%의 구동력을 자동으로 배분해 안정성을 높여준다.
뒤차와의 거리를 감지해 뒤차가 바짝 추격할 경우 추돌에 대비해 헤드 레스트를 앞쪽으로 기울여 머리를 보호하는 자동차도 있다. 또 앞차와의 거리를 감지해 너무 바짝 다가설 경우 자동으로 출력을 줄여 추돌을 방지하기도 한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자동차가 빌딩 벽을 타고 오르내리고, 차간 거리를 매우 짧게 해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처럼 2050년대가 되면 상상에서나 가능한 진화된 자동차가 등장할까.
2006년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그렇게 빠르고 안전한 자동차를 향해 한 발씩 다가서고 있는 듯하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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