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요자들의 빗발친 항의에 금감원은 실수요자 대출을 재개하도록 하루 만에 방침을 바꿨다. 11·15부동산대책 발표 전부터 알려진 대출규제 방침에 아예 부동산계약을 포기한 사람들은 또 ‘이래 속고, 저래 속은’ 셈이다. 2003년 10·29대책을 보고 집값 하락만 기다리던 서민은 손해를 본 반면, 그 무렵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를 구입한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은 적어도 3억 원의 시세차익을 챙긴 것과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수도 있다.
이백만 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부동산 상황(문제)의 핵심은 정책부실(不實)이 아니라 정책불신(不信)”이라고 주장했지만 정책을 못 믿도록 한 게 정부다. 이 전 수석인들 정부 정책에 따라 집값이 분명히 잡힌다고 믿었다면 한 달 이자만 400만 원이 넘는 8억여 원의 대출을 무리하게 받았겠는가.
11·15대책이 발표된 날 서울의 한 아파트 세입자는 “아파트 값이 뛰면 나도 뛴다”는 유서를 남기고 18층에서 몸을 던졌다. 분식점을 하는 한 시민은 2003년 10·29, 작년 8·31, 올해 3·30대책 등이 나올 때마다 정부가 하지 말라는 대로 ‘청개구리 식’ 부동산 투자를 해서 동산, 부동산 합쳐 2억4000만 원을 30억 원대로 불렸다고 한다. 청와대의 이 실장과 이 전 수석이 한 것은 투자이고, 분식점 주인이 한 것은 투기라고 할 텐가.
현 정부는 ‘정직하고 성실한 대다수 국민이 보람을 느끼게 하겠다’고 다짐하며 출범했다. 그러나 ‘강남 투기꾼’을 잡겠다며 ‘널뛰기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불똥은 서민에게 튀었다. 청와대는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해서 기존 정책을 포기하는 것은 국정을 책임진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고 했으나 집 없는 서민에게 도움이 된 ‘기존 정책’이 제대로 있기라도 한가. ‘개입하지 말아야 할 일’을 찾아내는 게 정부가 진짜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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