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한국의 메디치家로 날아오르다… ‘금호아시아나’

  • 입력 2006년 11월 21일 02시 56분


《“할아버지, 저는 지금 도쿄에 있습니다. 연주를 들으러 꼭 오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셨네요. 너무 속상하지만 이제부터는 제가 어디를 가든지 항상 연주를 들으실 수 있겠지요. 먼 곳에서나마 라흐마니노프 연주를 들어주세요. 오직 회장님께 바칩니다.”

지난해 5월 23일 박성용 금호아시아나 명예회장이 작고했다.

이 글은 당시 ‘도쿄 필’과의 협연을 위해 일본에 머무르던 피아니스트 손열음(20)이 박 명예회장의 사이버분향소에 올린 것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각별하다. 3세 때 피아노를 시작한 손열음은 1998년 금호영재콘서트로 음악계에 데뷔했다. 그는 고교를 건너 뛰어 곧바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수석 입학한 뒤 국제 콩쿠르에서 잇따라 입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2004년에는 박 명예회장의 추천으로 거장 로린 마젤이 이끄는 뉴욕 필하모닉 내한 공연에서 협연을 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미국에서 투병하던 ‘할아버지’는 건강 악화로 거동은 물론 말도 제대로 못하던 상태였다. 하지만 그의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빌헬름 켐프가 연주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열정’.

박 명예회장은 어린 음악친구가 “할아버지, 베토벤 소나타는 켐프가 ‘짱’”이라며 추천한 연주를 들으며 이승과 작별했다.

○ 한국의 메디치 가(家)

박 명예회장은 생전 한국의 마에케나스, 또는 에스테르하지로 불렸다.

마에케나스는 문예 보호에 공헌한 고대 로마제국의 인물이고, 에스테르하지는 하이든과 베토벤을 후원한 헝가리의 귀족이다.

프랑스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경제 교류는 상품과 서비스뿐 아니라 문화적 가치를 주고받는 것”이라며 ‘문화적 부가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금호아시아나의 문화 예술 후원은 재계의 사회공헌 흐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기부 위주의 단순한 형태에 문화라는 새 트렌드를 접목했다. 이를 통해 많은 국내 기업이 문화가 기업의 이미지를 바꾸면서 미래를 경영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적 가치임을 깨닫게 됐다.

금호아시아나는 문화 예술 분야에 대한 사회적 공헌을 통해 자연스럽게 ‘한국의 메디치 가(家)’ 반열에 올랐다. 그 향기는 강하고 진하다.

5월 박 명예회장의 1주기 추모음악회에는 전윤철 감사원장, 강신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신상훈 신한은행장, 황영기 우리은행장, 연극인 손숙 씨, 영화배우 안성기 박중훈 씨 등이 참석했다. 다양한 사람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것은 박 명예회장으로 상징되는 기업인의 문화에 대한 사랑이었다.

손숙 씨는 이날 “연주회장, 전시회, 가난한 연극배우들의 공연장엔 늘 당신이 계셨다”고 추모했다.

○ 영재는 기르고, 문화는 가꾸고

금호아시아나는 올해 초 창립 60주년을 맞아 ‘아름다운 기업’이라는 슬로건을 발표했다. 문화예술 지원은 아름다운 기업을 위한 7대 실천과제의 하나다.

요즘 TV를 통해 방영되는 그룹의 이미지 광고에서는 잔잔한 음악 속에 유연한 춤을 선보이는 발레리나와 거칠고 강렬한 느낌의 스트리트 댄스를 연습하는 비보이가 만난다. 이들의 첫 만남은 어색하지만 곧 서로의 차이를 넘어 함께하는 아름다운 춤을 춘다.

‘영재는 기르고, 문화는 가꾸고’가 금호아시아나의 사회공헌 모토다. 예술이 발전해야 국가가 진정한 일류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금호아시아나 그룹은 1977년 금호문화재단(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설립을 계기로 본격적인 사회공헌에 나섰다. 1989년 금호미술관, 2000년 금호 아트홀을 세워 문화의 장(場)을 제공했다. 2003년에는 국내 유일의 국제경쟁 단편영화제인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를 마련했다.

문화재단 김용연 상무는 “문화 분야에 대한 사회공헌은 금호와 아시아나항공의 전통적인 상(像)에 문화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더하게 됐다”면서 “기업의 사회공헌이 그룹의 속성까지 바꾸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유라 권혁주 김소옥 김혜진 레이첼 리, 첼리스트 고봉인 등 450여 명의 음악 영재들이 한국판 메디치 가의 그늘 아래서 성장했다. 로린 마젤, 펜데레츠키, 주빈 메타,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등 서구 음악계 거장들이 금호를 통해 한국과의 교류를 시작했고, 정경화 정명훈 장영주 백혜선 백건우 등 쟁쟁한 음악인들이 지원을 받았다.

○ 아름다운 기업-형에서 아우로

1946년 고 박인천 회장이 미국산 중고택시 2대를 사들여 ‘광주택시’로 시작한 그룹은 60년 뒤 아시아나항공, 금호타이어, 금호산업, 금호석유화학 등 25개 계열사를 둔 거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박 명예회장의 뒤를 이은 박삼구 회장이 임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돈 좀 많이 벌어 세금(법인세)도 내고, 문화활동에도 많이 씁시다.”

금호아시아나의 문화를 통한 사회공헌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형에서 동생으로 이어진다. 순간의 지원이 아니라 변함없는 지속적인 사랑이다.

아시아나 단편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의 이준익 감독은 “금호아시아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을 보여 준다”며 “아름다운 기업의 사회공헌이 뒷받침될 때 문화를 꽃피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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