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설계사 이인숙(43) 씨는 운동장 한쪽에 신문지를 깔고 앉았다. 손에는 ‘민영의보(민영의료보험) 개악 반대’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그는 “정부가 민간보험사가 파는 민영의보의 보장 범위를 축소하려고 하는데, 이러면 상품을 팔기 힘들어질 뿐만 아니라 소비자도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민영의보가 어떻게 바뀌기에 이들이 이곳에 모였을까.
○ 민영의료보험이란
누구나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국민건강보험은 건강보건법이 정한 질병 치료비 및 의료장비 이용료를 지급한다. 대체로 치료비 및 이용료가 중저가인 항목을 보장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전체 비용의 60%가량을 주고 나머지는 환자 본인이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보험사가 판매하는 민영의보는 이런 본인 부담금과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장치 등 고가의 치료시설 이용료를 보장하기 위한 상품이다.
그런데 보건복지부와 열린우리당은 최근 민영의보의 보장 범위에서 본인 부담금을 제외하도록 했다. 민영의보는 고가(高價)의 치료비만 보장하라는 뜻이다.
○ 3가지 쟁점
정부와 보험업계의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는 부분은 민영의보의 보장 범위다.
복지부는 민영의보에 가입한 사람들을 진료하는 병원들이 보험금을 타기 위해 과잉 진료를 한다고 본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 적자 폭이 커졌다는 것이다.
서울대 이진석(의료관리학) 교수는 연초 한 세미나에서 “민영의보 가입자의 의료비 지출액이 비가입자에 비해 크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손해보험협회 등 보험업계는 “민영의보 가입자가 고의로 과잉 진료를 청구했다는 증거는 없다”며 “오히려 진료를 자주 받음으로써 질병을 조기에 발견해 총치료비를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는 현재 민영의보 상품이 너무 많아 관리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상품을 10개 유형으로 단순화해야 복잡한 상품 구조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보험업계는 소비자가 자신에게 맞는 상품을 고를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반발한다.
민영의보 상품에 대한 감독 권한을 지금처럼 금융감독위원회에 둘지, 복지부로 이양할지에 대한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민영의보의 보장 범위가 축소되면 보험 가입자가 받는 혜택이 크게 줄어든다.
최근 과로로 응급실 신세를 졌던 박모(45·회사원) 씨의 예를 살펴보자.
병원 측이 박 씨에게 청구한 금액은 초진료, 주사료, 검사료, 영상진단비 등 총 20만5834원.
보험에 가입한 박 씨는 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내년 이후 민영의보의 보장 범위가 줄어들면 박 씨는 본인 부담금으로 8만6910원을 내야 한다.
민영의보의 보장 범위 축소로 건강보험 재정이 좋아지면 중장기적으로 건보공단이 지금보다 치료비를 더 많이 지급할 수도 있다. 비가입자의 혜택이 커지는 셈이다.
현 체제가 유지되면 민영의보에 가입한 사람들은 싼값에 의료 서비스를 계속 받을 수 있다. 반면 건강보험 재정 악화로 미가입자에 대한 서비스는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
경희대 정기택(의료경영학) 교수는 “제도를 갑자기 바꾸면 기존 가입자가 종전보다 적은 보상을 받게 된다”며 “민영의보를 위축시키기보다는 의료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공(公)보험과 사(私)보험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의료비 부담체계 | ||
중저가 치료 부분(급여 항목) 79.8% | 고가 치료 부분(비급여 항목) 20.2% | |
건강보험공단 부담 56.4% | 환자 부담 23.4% | |
자료: 국민건강보험공단 |
민영의료보험 개편 관련 3대 쟁점 | ||
쟁점 | 정부 방침 | 보험업계 방침 |
보장범위 축소(중저가 치료 항목 제외) | 과잉 치료로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되고 있으므로 축소 필요 | 적극적인 치료로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 현 체제 유지 |
상품 단순화 | 통합관리를 위해 상품을 10개 유형으로 축소 | 상품 줄이면 소비자 선택권 침해 |
감독권 소재 | 현행 금융감독위원회에서 보건복지부로 이양 | 현 체제 유지 |
민영의료보험 보장 범위가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 | ||
구분 | 긍정적 영향 | 부정적 영향 |
보장 축소될 때 | 정부 계획대로 건강보험의 보장 범위가 확대되면 보험 미가입자의 부담 감소 | 보험에 가입해도 중저가 치료 항목에 대해선 비용 부담 |
현 체제 유지할 때 | 보험 가입자의 의료비 부담 감소 | 건강보험 재정 악화로 보험 미가입자에 대한 의료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가능성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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