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 Company]현장 누비는 ‘鐵의 여인’들

  • 입력 2006년 11월 25일 02시 55분


STX조선 탑재1팀 자동용접반 이순영, 정칠선, 이종일 최진선 기사(왼쪽부터)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선박용접도 척척 해내는 이들은 ‘용접의 여왕’으로 불린다.사진 제공 STX조선
STX조선 탑재1팀 자동용접반 이순영, 정칠선, 이종일 최진선 기사(왼쪽부터)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선박용접도 척척 해내는 이들은 ‘용접의 여왕’으로 불린다.사진 제공 STX조선
6월 울산 동구 미포축구장에서 현대중공업 직원과 외국 선주회사 직원 1700여 명이 한마음 체육대회를 열었다. 사진 제공 현대중공업
6월 울산 동구 미포축구장에서 현대중공업 직원과 외국 선주회사 직원 1700여 명이 한마음 체육대회를 열었다. 사진 제공 현대중공업
《‘중공업’ 하면 육중하고 거대한 작업 현장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중공업을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터프한 이곳에 당당히 뛰어든 여성도 적지 않다. 섬세함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여성들은 중공업의 각 부문에서 맹활약하며 ‘우먼 파워’를 발휘하고 있다.》

○ 수출 길 개척의 주역

㈜효성의 중공업 PG 수출팀은 올해 11월 베네수엘라 국영 전력청으로부터 765kV급 초고압 변압기 4대를 수주했다. 국내 기업이 765kV급 변압기를 수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765kV급 초고압 변압기 제조에는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해 자격 심사를 거쳐 수주에 직접 참여한 업체는 효성을 비롯해 단 세 군데였다.

이번 수주전의 실무를 총괄한 사람은 수출팀 백소영(32) 과장.

백 과장은 “사전 심사부터 최종 심사에 이르기까지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며 “언어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했고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경쟁하느라 힘들었지만 좋은 결과를 얻게 돼 보람이 더 컸다”고 말했다.

수력발전에 주로 의존하는 베네수엘라는 불규칙적인 강수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백 과장은 수주를 성공한 데 따른 기쁨도 크지만 베네수엘라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하게 됐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느낀다.

“브라질과 베네수엘라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765kV 변압기를 쓰기 때문에 개척할 분야가 아주 많아요.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더 열심히 뛸 겁니다.”

○ “세계를 무대로” 당찬 새내기

현대중공업 엔진기술개발부 김세령(25) 씨는 올해 1월 입사한 새내기 사원.

이 부서 직원 50여 명 중 유일한 대졸 여성으로 선박용 엔진 기술과 엔진 신제품 개발을 맡고 있다.

김 씨는 수시로 엔진 실험실과 선박 엔진룸, 엔진조립공장 등을 방문하며 바쁘게 일하지만 늘 활기가 넘친다. 김 씨는 최근 가스엔진 개발을 위해 오스트리아 출장을 다녀왔다. 그는 “일단 업무 체계가 확실하고 현장 중심 기업이라 역동적인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에는 해외 선주사에서 파견한 다양한 국적의 직원들이 상주해 ‘작은 지구촌’을 이루고 있다.

“전 세계를 무대로 일하다 보니 더 큰 세상을 만날 수 있어요. 큰 비전을 갖게 되고 시야도 훨씬 넓어지는 것 같아요.”

김씨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했다.

“선박 시운전이나 엔진조립공장 현장근무 등 그동안 여성이 하지 않았던 분야를 개척해 보고 싶어요. 해외 애프터서비스나 기술영업에 관한 업무도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죠.”

○ 열정, 여유 지닌 우먼파워 4인방

STX조선 탑재1팀 자동용접반 이종일(46), 정칠선(39), 최진선(37), 이순영(34) 기사는 ‘용접계의 여왕’으로 불린다.

이들이 맡은 업무는 선체 자동 용접 업무.

작업자가 용접 설치를 해 놓으면 기계가 작업면을 따라 자동으로 용접을 한다. 작업자는 작업 상황을 확인하고 잘못된 부분이 생기면 즉시 바로잡는다.

용접계의 여왕들은 자동 용접은 물론 수동용접까지 모두 거뜬히 해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 이들에게 용접 기술을 지도하는 김대경 기사는 여성 기사들이 꼼꼼한 데다 인내심도 강하다고 평가했다.

김 기사는 “여성들은 한번 작업을 시작하면 완전히 끝내기 전엔 손을 떼지 않아 그 집중력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이순영 기사는 “특별히 힘든 건 없지만 20∼30kg 가량의 장비를 선박 위로 옮겨야 하는 경우 남자 동료들의 도움을 받는다”며 “다른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기술을 익혀 실력을 키우는 데 누구보다 열심이다.

최진선 기사는 “선주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최고의 배를 만드는 여성 용접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철보다 녹이기 힘든 게 바이어의 마음”

헬기 띄우고 학교 짓고… 조선업계, VVIP 마케팅에 전력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본사에 최근 영국에서 감사패와 편지 한 장이 배달돼 왔다.

세계 최대 정유업체인 엑슨모빌사(社) 매니저인 마이클 페루 씨가 보낸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울산 현대조선소에서 사할린 해양설비 공사 감독관으로 근무한 그는 현대중공업의 도움으로 한국 전역을 관광하고 각종 산업체를 견학했다. 페루 씨는 “한국인들의 따뜻한 배려에 감사하며 꼭 다시 일해 보고 싶다”는 마음을 편지에 적었다.

배 한 척의 평균 가격이 1000억 원에 달하는 만큼 조선업체 고객은 그야말로 거물급이다. 조선업체들은 이들 VVIP(초우량고객)를 사로잡기 위한 서비스에 만전을 기한다.

올해 70여 척의 배를 만드는 현대중공업은 선박 명명식에 찾아오는 선주들만 해도 한 달에 5, 6명에 이른다. 선주는 대부분 국영회사 관계자들이거나 중동지역 왕족 등 국빈급 VVIP들이다.

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서비스를 하기 위해 현대중공업은 울산과 경북 경주에 5성급 ‘현대호텔’을 지었다. 선주회사에서 파견한 감독관을 위한 서비스도 최상급을 지향한다. 이들은 배가 만들어지는 2, 3년 간 한국에 머문다. 울산 현대조선소에는 현재 500여 명의 선주사 감독관과 1300여 명의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회사 측은 조선소에서 5분 거리인 울산 동구 방어동에 20∼50평대 외국인아파트 184채를 지었다. 이달 18일 완공한 이 아파트에는 숟가락부터 에어컨까지 모든 생활용품이 갖춰져 있다.

자녀들을 위해 영국교과과정을 도입한 ‘현대외국인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삼성중공업도 지난해 11월 거제조선소 내에 경남 유일의 특급호텔인 ‘삼성중공업 거제호텔’을 열었다. 또 삼성테크윈에서 한 해 50억 원에 헬기 2대를 빌려 하루 4차례 선주를 비롯한 VIP들을 부산 김해공항에서 거제호텔로 모시고 있다.

대우조선해양도 1984년 옥포외국인학교를 설립했다. 이 학교는 경남 유일의 외국인학교로 인근 다른 조선소 외국인 자녀들도 이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몇 달씩 기다리는 실정이다.

STX조선은 선주회사 외국인 직원들을 보살피는 팀(CS팀)을 따로 만들었다. CS팀은 11개 선주사, 60여 명의 직원을 위해 생일파티는 물론 야유회와 송년회 등을 챙긴다. 4월에는 경남 합천군 해인사 등 국내 관광지를 돌며 한국문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CS팀 최윤정 대리는 “감독관이 고국으로 돌아갈 때 애완견을 대신 팔아주기도 하고 충치 때문에 고생하는 감독관과 치과에 함께 다니는 등 가족처럼 돕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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