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4일 “불법 폭력 집단행위의 주동자뿐만 아니라 적극 가담자와 배후 조종자까지 밝혀내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날 한명숙 국무총리 주재로 관계장관회의를 한 후 발표한 담화문에서 “불법 폭력시위에 대해 더는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 형사처벌은 물론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등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무관용(Zero Tolerance) 원칙’을 천명했다.
‘무관용 원칙’은 1994년 미국 뉴욕의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과 윌리엄 브래튼 경찰국장이 실시해 유명해진 정책으로 경범죄와 윤락행위 등을 집중 단속해 2년 만에 뉴욕의 최고 우범지대였던 할렘 범죄율을 40%나 떨어뜨렸다.
그러나 정부의 ‘무관용 원칙’이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불법 폭력시위에 대해 수차례 담화문과 호소문을 발표하며 “엄격히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시위대의 불법 폭력 행위가 가장 큰 문제지만 정부가 초기부터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했다면 이런 사태는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차라리 맞는 게 낫다”=김성호 법무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동안의 시위가 평화적으로 이뤄져 (이번에) 과격한 단속은 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걸핏하면 불법과 폭력으로 번지는 집회시위에 대한 정부 인식이 안이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그동안 정부 대응은 불법 근절보다 시위대 눈치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허준영 경찰청장의 낙마가 대표적인 사례다.
허 청장은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폭력시위에 대한 경찰 진압 과정에서 시위대원 두 명이 숨진 것에 ‘책임’을 지고 퇴진했다. 당시 집회는 화염병이 투척되고 경찰차량이 불에 탄 불법 폭력시위. 허 청장 사퇴 후 경찰 내부에서는 “시위를 진압하느니 차라리 맞는 것이 낫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집회 주도자들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 문제를 둘러싸고 검찰과 법무부가 갈등을 빚었다.
검찰이 촛불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시위를 주도한 시민단체 간부들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하자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화를 냈고, 법무부가 경위를 조사했다. 불법 시위였지만 처벌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게 당시 청와대의 기류였다. 결국 검찰은 시위 주동자를 구속하지 못하고 6명을 벌금 100만∼300만 원에 약식 기소했다.
▽말로만 ‘엄중 대처’=현 정부 들어 폭력시위는 양적으로 줄었지만 질적으로는 과격화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현 정부 출범 이후 폭력시위 건수는 2003년 134건, 2004년 91건, 2005년 77건, 올해 7월 말까지 30건으로 매년 감소했다.
하지만 시위의 과격화 정도를 보여 주는 경찰 부상자는 2004년 621명, 2005년 893명 등으로 오히려 늘었다. 올해는 7월 말까지 469명이 부상했다.
현 정부 들어 전북 부안군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설치 반대 시위, 경기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시위, 경북 포항건설노조의 포스코 본관 점거 농성 등 대규모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정부는 매번 ‘엄중 대응’을 천명했지만 여론의 눈치를 보며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4월 GM대우 경남 창원공장에서 불법 집회를 막던 경찰관 6명이 비정규직 노조원들에게 집단 폭행당했지만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2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를 앞두고 경찰은 “불법 과격 행위자를 현장에서 검거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장에서 체포된 시위 참가자는 27명에 그쳤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그래도 우린 강행!
22일의 불법 폭력시위에 대한 정부의 강경대응 방침에도 불구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가 29일과 다음 달 6일로 예정된 FTA 반대 집회를 강행하기로 해 또다시 공권력과의 충돌이 예상된다.
범국본은 “29일과 12월 6일로 예정된 집회를 예정대로 강행하기로 하고 장소와 참가 인원 등의 문제를 지도부가 협의 중”이라고 24일 밝혔다.
민주노총도 이날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잘못된 정부 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노동자와 농민의 저항은 계속될 것”이라며 “29일 반FTA 2차 범국민총궐기대회 때 총파업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29일 전국에서 동시 다발 파업 집회를 연 뒤 오후 4시부터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범국본 측의 총궐기대회에 참가할 계획이다.
그러나 경찰은 범국본 측이 29일 서울광장 서울역광장 서소문공원 등 서울시내 6곳에서 2만2000명이 모이는 한미 FTA 반대집회를 열겠다고 15일 농민연합 명의로 신고한 집회를 이미 불허했다.
임승택 경찰청 경비과장은 “범국본 측이 준법집회를 연다는 확실히 믿을 만한 근거를 내놓지 않는 한 집회신고를 다시 하더라도 허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집회 금지 통보에도 불구하고 범국본 측이 집회를 강행할 때에는 경찰력을 총동원해 상경 농민을 출발지에서부터 차단하는 등 집회를 원천봉쇄하기로 했다.
경찰은 22일 있은 폭력 시위와 관련해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경북연맹 등 전국 5개 지역의 사무실 9곳을 24일 압수수색했다. 경찰청은 “22일 폭력시위가 미리 기획된 것인지, 시위를 배후 조종한 세력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관련 단체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압수수색한 단체는 전농 경북연맹과 강원연맹,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경북연합회와 강원연합회, 한미 FTA 저지 대전충남운동본부와 광주전남운동본부, 대구경북 통일연대,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희망연대 광주전남준비위원회 등이다.
경찰은 집회 관련 회의록, 기획안, 예산집행 명세서, 죽봉, 각목, 컴퓨터 등 22종류 3000여 점을 압수했다. 경찰은 압수한 자료를 분석해 폭력 시위를 지시했거나 방조한 사실이 드러나는 관련자는 모두 형사처벌할 방침이다.
한편 경찰청은 24일까지 시위를 주도한 범국본 지역집행부 94명에게 출석요구서를 발송했다. 또 광주 서부경찰서는 집회 현장에서 연행한 21명 중 전국농민연대 광주전남본부 사무처장 위두환(43) 씨 등 6명에 대해 폭력시위를 주도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로 24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불법시위 민노총 대구본부장 구속
대구지법 형사1단독 이상균 판사는 불법집회를 주도한 혐의(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기소된 민주노총 대구본부 정우달(44) 본부장에 대해 24일 징역 10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집회가 추구하는 내용이 아무리 정당하다 하더라도 법적 절차를 무시하거나 폭력적이어서는 안 된다”며 “피고인이 주도한 집회로 인해 많은 경찰관이 다치고 재산 손실이 발생하는 등 그 해결 방법이 법적 절차를 크게 벗어났다”고 밝혔다.
대구=정용균 기자 cavat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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