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일러스트레이터
아이오와주립대 BPMI 학부는 ‘과학 일러스트레이터(SI)’를 양성하는 곳이다. 입학하자마자 물리 화학 생물 지학 등 기초적인 과학과목과 함께 미술 수업도 받는다.
이곳에선 동물과 식물, 인체의 아주 정교한 부분까지 표현해 내는 미술기법을 익힐 수 있다. 천문학, 지질학 지식을 토대로 우주나 공룡도 상상해 그린다.
차 씨는 동물이나 인체를 제대로 그리고 싶어 해부학과 인류학 수업까지 듣고 있다. 수많은 뼈의 이름과 모양까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과학 교양도서나 전공서적에는 보통 책과 달리 학술적 사실에 근거한 정확한 그림이 필요하다. 이런 그림을 지금까지는 일반 화가가 그리거나 그림을 외국에서 수입해 온 경우가 많았다.
차 씨는 “SI 과정을 마치면 일반적인 미술 전공자보다 생물의 특징을 정확히 파악해 그릴 수 있다”고 말했다.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스케치
최근엔 국내에서도 SI와 비슷한 직업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경기 포천시에 있는 국립수목원의 초빙연구원 박수현(70) 박사는 지금까지 500∼600점의 식물 세밀화(細密畵)를 그렸다.
우선 식물의 사진을 찍고 채집해 표본을 만든다. 꽃과 잎, 열매를 각각 떼어 내 현미경으로 관찰한다. 사진과 표본, 현미경을 견주어 보며 생김새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스케치한다. 이렇게 공을 들이니 작품 하나 완성하는 데 몇 주씩 걸리는 게 다반사다.
박 박사는 식물분류학을 전공하고 고교 교사로 일한 식물 전문가.
그는 “식물의 학술적 특징을 정확히 잡아내야 하니 전문 지식을 갖추는 것은 필수”라고 강조한다.
영국의 큐가든이나 미국의 뉴욕식물원에서는 자체적으로 세밀화가를 양성한다.
세밀화가 식물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표본은 말리는 동안 색과 형태가 원래 식물과 달라질 수 있다. 암술과 수술, 가느다란 털 같은 세세한 특징은 사진에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화학물질까지 디자인하는 과학자도 있다.
연세대 생물정보학분자설계연구센터(BMDRC)의 송미경(44), 김한조(32) 박사.
두 사람은 화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실험도구나 약품이 아닌 컴퓨터로 일을 한다. 물질의 기본단위인 원자의 무게나 원자 간 거리 등 여러 요소를 컴퓨터에 넣어 화학물질의 구조를 계산해 내는 것이다. 송 박사는 수소를 저장할 수 있는 신소재 물질을, 김 박사는 항암제 항생제 결핵치료제 등 신약 후보물질을 디자인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이 분야는 불모지에 가까웠다.
독학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까지 익혀야 했던 이들은 “디자인 결과에 동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게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지금은 과학계도 분자 디자이너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과학자들은 이들이 디자인한 분자를 실제로 만들어 실험용으로 쓴다.
아무 물질이나 골라 실험하는 것보다 정교하게 디자인된 물질로 연구하는 게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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