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상계동지점 수습행원 정선우(25) 씨는 ‘운이 좋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졸업을 앞두고(올 8월) 처음으로 입사 원서를 낸 우리은행에 곧장 합격했기 때문이다.
비(非)상경계열 전공(서강대 종교학과)에, 학점은 3.0을 겨우 넘었다. 토익 점수는 700점이 채 안 된다. 흔히 말하는 ‘스펙’(specification·여러 외형적 조건)으로만 보면 금융권에 취업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러나 정 씨가 운으로 취업 관문을 뚫은 것은 아니다.
○ 목표 설정→수요 파악→전략적 준비
아르바이트로 신용카드를 팔아 본 경험이 있어서 ‘영업력’이라는 말에 자신감을 얻었다.
“남들이 1주일 동안 할 분량을 하루에 해치웠을 정도로 영업에 천부적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고객에 따라 신용카드를 만들게 될지, 끝까지 거절할지 ‘필(feel)’이 오죠.”
취업 시장에서 구직자가 상품이라면 수요자는 기업이다. 상품을 잘 팔기 위해 수요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듯 자신을 뽑을 사람의 니즈(needs)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정 씨는 우리은행 관련 신문 기사는 모두 스크랩하고, 그 이후로도 우리은행 채용 설명회에 두 차례 참석해 상담을 하고 정보를 모았다. 인터넷 구직자 동호회에서 은행권 취업 준비 공부모임을 만들어 필기시험을 준비했다.
○ 맞춤형 자기소개서…면접에서는 리더십 발휘
“저는 스펀지 같은 사람입니다.”
정 씨는 자기소개서에서 자신을 ‘스펀지’로 소개했다. 다양한 지식을 흡수하거나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릴 때 스펀지처럼 유연하다는 것. 자신과 다른 점도 잘 수용한다고 강조했다.
캠퍼스 리크루팅에 세 번이나 방문했던 것을 실무자들이 기억할 정도였다. 심지어 다른 학교에서 열린 행사에도 왔다. 이 때문인지 소개서에서 회사가 어떤 인재를 원하는지 간파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스펙이 좋은 것도 아니고 남다른 특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경제학 전공도 아니지만 ‘준비된 인재’라는 느낌을 줬다.
정 씨는 “1년여간 일간지 경제기사를 꾸준히 읽은 것이 필기시험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최신 경제 뉴스와 관련된 문제가 주로 출제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시험에서는 자유무역협정(FTA)과 원화가치 강세에 관련된 논술 문제가 나왔다.
실제로 필기시험은 1년 정도 일간지 경제기사를 열심히 읽었으면 따로 준비할 게 없다.
그의 면모는 2박 3일간의 실무면접에서 증명해 보였다. 조장을 맡은 정 씨는 독특한 인사법(손바닥을 내밀고, 열정! 19조입니다!)과 면접을 패러디한 퍼포먼스, 입체 카드 형식의 제품 홍보물 제작 등을 주도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정 씨는 특히 ‘이기적인 조원들’을 가장 신경 썼다고 밝혔다. 분위기를 가장 흐리는 조직원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꾸 띄워 주고, 잘한다고 북돋울수록 성과가 좋죠. 자아도취감에 빠지게 되거든요.”
실무면접에서 두각을 보였다. 응시생들을 가장 가까이서 살핀 행사진행요원 평가가 특히 좋았다. ‘협동심, 자신감, 리더십, 활동성’ 같은 자질이 돋보였다. 실무면접에서 조장은 번호순으로 잘랐을 때 가장 앞 번호가 맡게 되므로 조장과 리더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정선우 씨는 리더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입행한 지 석 달을 갓 넘긴 정 씨의 업무는 개인여신 담당이다. 29일 최종합격을 앞둔 하반기 공채 채용 과정에서 행사진행요원으로 동원되기도 했다. 상사인 오인균 우리은행 상계동지점장은 “정 씨는 성격이 활발하고 적극적이어서 지점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 씨는 ‘합격 비결이 무엇인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조직이 꼭 공부 잘하는 사람만 필요로 하는 건 아니다”라며 “일찍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에 ‘다걸기(올인)’한 것이 주효한 것 같다”며 쑥스러운 듯 웃음을 보였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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