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덴마크 오디오 기업 뱅앤올룹슨엔 회사에 소속된 디자이너가 없고 ‘계약직’ 프리랜서 디자이너만 있다. 핵심 경쟁력을 담당하는 핵심 인재가 회사 안에 없는 것이다.
이 회사의 마이클 앤더슨(43·사진) 수석 부사장은 최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매장에서 한 인터뷰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 시스템’을 도입한 뱅앤올룹슨의 독특한 인재경영 철학에 대해 설명했다.
“디자이너가 회사에 소속되면 경영진과 엔지니어들의 크고 작은 요구와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면 디자이너는 창의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결국 소비자들에게 외면받는 실패작이 나올 가능성이 커집니다.”
뱅앤올룹슨은 1980년대 초반까지 프리랜서 디자이너와 회사 소속 디자이너를 동시에 활용했다. 그러나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이 훨씬 더 상부의 ‘눈치’를 안 보고 창의적인 작품을 내놓는다는 판단에 따라 프리랜서 단일 체제를 택했다.
앤더슨 부사장은 “현재 뱅앤올룹슨은 데이비드 루이스를 포함해 모두 6명의 ‘A급’ 디자이너와 장기 계약을 하고 있다”며 “이들은 ‘예비군(Reservist)’으로 불리는 그룹에서 몇 년간 철저한 평가와 검증을 받은 인재들”이라고 말했다.
“디자이너가 최고경영자(CEO)만큼 큰 권한을 행사할 수도 있습니다. 이들의 요구는 모두 들어준다는 게 기본 원칙이거든요. 엄청난 시간과 돈을 투자해 제품 생산라인의 규격을 완전히 바꾼 적도 있습니다. 우려도 있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죠.”
베테랑 디자이너 6명의 지원을 전담하는 인력은 회사 전체 직원의 약 10%인 300여 명에 이른다.
앤더슨 부사장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규모 인하우스(사내) 디자이너 시스템을 보유한 한국 기업들은 다양한 제품을 빠르게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기존 제품과 완전히 구별되는 디자인의 제품은 경영진과 엔지니어들로부터 독립된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에게서 나온다”며 “한국 기업들도 핵심 역량을 갖춘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