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음조차 어려운 낯선 이름. 그러나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인도의 빌 게이츠.’ 인도 최고의 IT 그룹인 위프로를 이끄는 세계 IT업계의 거장이다.
위프로의 파워는 엄청나다. 연간 1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린다. 21세기 초 전 세계 IT업계를 강타한 불황으로 많은 기업이 프로그래머를 줄일 때 5000여 명의 직원을 새로 뽑는 여유를 보였다.
위프로는 세계 최초로 ‘세이캄(SEI-CAMM) 5’ 등급을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세이캄 5는 미국 소프트웨어엔지니어링협회가 최고 기술을 갖춘 기업에 주는 등급. 세이캄 5 등급을 받은 기업은 전 세계에서 50여 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위프로의 출발이 조그만 식용유 회사였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70년대 말 정권을 차지한 사회당은 외국계 컴퓨터 업체를 몰아내고 자국 산업 육성책을 썼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프렘지 회장이 이끈 위프로는 컴퓨터 사업에 뛰어들었다. 위프로 신화의 시작이다.
영세한 중소기업 위프로가 엄청나게 성장한 요인으로 프렘지 회장을 꼽는데 토를 다는 사람은 없다. 위프로는 물론 인도 실리콘밸리의 신화를 이끌고, 인도하면 IT를 떠올리게 만든 주역. 두말할 것 없이 천재적 인재, 핵심인재의 힘이다.
“일류 엔지니어 한 명이 평범한 인력 300명보다 낫다”(앨런 유스티스 구글 부회장)는 말은 이제 충격적이지 않다.
세계 곳곳의 정부와 기업이 앞장서 핵심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시대다.
먼 나라 얘기도 아니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제3기 과학기술기본계획에 따르면 1990년대보다 2배 이상 많은 글로벌 일류인재를 유치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중국도 세계 최고의 인적 네트워크를 자국 내에 형성한다는 야심에 차 있다.
그렇다면 국내 상황은 어떨까. 올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이 발표한 ‘세계 두뇌유출지수’에서 한국은 조사대상국 58개국 가운데 38위(4.91)에 머물렀다. 4.0이면 두뇌유출이 심각한 지경을 뜻한다니 노란 경고등은 벌써 켜진 셈이다. 고급인력의 눈으로 보면 한국의 기업환경은 미래를 걸기에 불안한 측면이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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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1명>평범한 직원 300명
국내에서도 이같은 지적은 끊임없이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핵심인재 관리의 4가지 성공 포인트’ 보고서에서 “현재 제조업체의 71.9%가 핵심 인재 부족을 호소한다”며 “인적자원 수준이 단숨에 높아지기 어려워 기업의 인재양성 시스템은 대대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다행스러운 건 국내 기업들이 이러한 위기상황에서도 무방비 상태는 아니라는 점이다. 많은 기업의 경영진이 ‘기업의 운명은 천재적 인재의 손에 달렸다’며 핵심 인재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인재경영의 최고 화두로 떠오른 핵심 인재. 그 치열한 경쟁시장을 국내 기업들은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살펴 보자.
○ 핵심인재는 미래의 꿈이다
SK텔레콤의 주요 임원들이 고급인력 채용을 위해 해외로 나가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해외 채용은 현지 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나라에서 활발하게 이뤄진다. 특히 차세대 성장 동력이 될 미래 산업이나 원천기술 등과 관련된 분야에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다.
9월 중순부터 추진했던 중국과 미국의 핵심 인력 채용은 거의 마무리된 상태. 명문대 경영학석사(MBA) 출신을 포함해 미국에서 15명, 중국에서 20여 명 뽑을 예정이다.
미래의 핵심인재가 될 해외인력에 대한 투자도 활발하다. 올해 7월에 시작한 글로벌 인턴십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 대학에 다니는 우수 외국인 유학생 40명을 선발해 다양한 업무 체험 기회를 제공했다. 향후 정규 채용에도 적극 반영할 계획.
동부는 ‘세계 일류의 좋은 기업(Excellent Company)’이라는 목표에 걸맞은 핵심 인재 채용을 주된 과제로 삼고 있다. “우수 인력의 전략적 확보와 양성은 시스템에 의해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김준기 회장 지시에 따라 사업 분야별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참여해 채용 프로그램을 관리한다.
임원 및 간부사원 공개채용과 전문 우수 인재 채용은 동부가 심혈을 쏟는 부문.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석박사 이상 학위 취득자와 경력자들을 모은다. 채용 인원이나 분야는 사전에 제한하지 않고 능력과 전문성만 갖췄다면 충원 여부와 상관없이 뽑는다.
해외인력 채용에 미래 산업의 꿈을 걸기도 한다. 현대·기아자동차는 2002년부터 매년 100여 명의 해외 우수 인력을 채용하고 있다. 해마다 스탠퍼드대, 미시간대 등 미국은 물론 유럽 일류대학을 돌며 채용설명회를 지속적으로 여는 것도 핵심인재 영입을 위한 노력.
올해는 전기·전자 부문이나 생산기술 부문 등 이공계열 대학의 학위자를 선발하고 있다. 현대차 측은 “자동차 산업의 선도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이공계 우수 인력에 집중한다”며 “선발된 인력은 미래 자동차 핵심기술을 이끌 주역으로 활용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 산학 연계를 통해 키워낸다
삼성전자는 이를 위해 CEO까지 투입해 국내 산학 협력은 물론 해외대학 대상의 기업설명회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삼성 임원들이 대학 강연과 학회 참석 등에 열심인 것은 비즈니스와 병행해 핵심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서다.
삼성전자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키우는 프로그램은 대학마다 다양하다. 성균관대는 삼성전자가 세부 커리큘럼 등 전공 운영에 대한 사항까지 함께 결정하는 ‘휴대폰학과’를 만들었다. 수석연구원이나 임원들이 각 연구그룹에 공동 지도교수로 나선다.
박사급 연구원과 교수진이 참여해 카이스트에 만든 ‘삼성반도체교육프로그램(EPSS)’이나 경북대 아주대 등 전국 14개 대학에 만든 ‘정보통신트랙’도 비슷한 취지. 필요한 핵심인재는 맞춤 방식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다.
해외 우수인력 채용도 활발하다. 올해부터 현지에서 대졸 신입(3급) 사원 채용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전 세계 50여 개 대학에서 기업설명회를 연다.
LG전자는 해외에서 핵심인재를 발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키워내겠다는 전략이다. 해외법인의 현지 인력을 대상으로 한국에서 교육과 순환근무의 기회를 제공하는 ‘글로벌 HPI(High Potential Individual)’를 운영한다.
2003년부터 시작한 글로벌 HPI는 2주간의 합숙훈련을 거쳐 6개월에서 1년간 개발 생산 마케팅 등 국내 현업부서에 해외 인력을 배치하는 프로그램. 직무역량을 키울 뿐 아니라 해외 인력이 스스로 핵심인재라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기회가 된다.
전략적인 해외 산학연계 모델인 ‘글로벌 LG 트랙’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의 LG전자 사업본부와 국내외 대학, 해외법인 간에 산학협력을 진행한다. 현재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서 진행 중이며 앞으로 중국과 러시아 등 주요 타깃 지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남양유업은 식품 및 낙농 관련 학과에 다니는 대학 3학년생을 매년 5명 안팎씩 선정해 자사의 연구인력으로 육성하는 산학장학생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대학 3, 4학년과 대학원 과정의 학비와 생활비를 지급하고 필요할 경우 해외 유학(박사과정)까지 지원한다. 학위를 마친 장학생들은 남양유업 중앙연구소의 연구인력으로 활동하게 된다.
기업 미래가치 위해선 전문가 양성이 더 중요
○ 내부에서 발굴하고 관리한다
그러나 우수인재 확보보다 더 중요한 건 인재를 관리 육성하고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터를 닦아주는 일이다. 인재를 채용해도 회사에 적응시키지 못하면 안 뽑느니만 못하다. 더구나 다른 둥지를 찾아 떠난다면 치명적인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KTF는 ‘미래 기업가치 창조를 위한 최고의 전문가 육성’을 목표로 중장기 인재육성 방향을 설정했다. 글로벌 리더십 및 선진 지식 습득을 위한 교육파견 과정은 인재 관리와 육성을 위한 중장기사업의 근간이다.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국내외 경영학석사(MBA) 과정 7개와 전문가 육성 스페셜 양성과정 2개. 현재 국내 교육과정에 43명이 파견돼 있으며, 국외 MBA 과정에선 4명이 교육받고 있다. 이들은 향후 이동통신 사업의 핵심 영역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KTF 측은 “업무 공백과 손실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미래성장 산업을 주도하고 성과를 키우는 데는 핵심인재 육성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적극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재 육성에서 정신적 보상을 강조하는 기업도 있다. 삼성SDI는 핵심인재를 겨냥해 ‘SDI 기네스 챔피언’이란 제도를 운영한다. 이 제도는 특허 기술과 연구논문 수가 많은 임직원과 연구원을 챔피언에 등록해 명예욕을 채워 주는 것.
또 ‘비타민을 찾아라’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각 부서에서 삼성SDI의 성장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임직원을 선발해 육성하기도 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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