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고시 뚫자” 족집게 과외 성행

  • 입력 2006년 12월 4일 03시 00분


최근 한 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기업별 채용 공고를 보고 있다.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면서 ‘족집게 과외’ 등 취업 사교육을 받는 구직자가 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최근 한 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기업별 채용 공고를 보고 있다.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면서 ‘족집게 과외’ 등 취업 사교육을 받는 구직자가 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대학 휴학생 김덕상(26) 씨는 4개월째 한 외국어학원에서 매달 15만 원을 내고 토익(TOEIC) 강의를 듣고 있다. 한 달 4만8000원의 한문 강좌도 듣는다. 15만 원짜리 컴퓨터 강좌는 이미 마쳤다.

김 씨는 곧 7주 과정(학비 390만 원)의 미국 단기 어학연수를 갈 예정이다. 아무래도 학원 강의만으로는 취업에 필요한 영어 실력을 키우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각종 학원 수강료로 한 달에 30만∼40만 원을 지출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다”고 말했다.

홈쇼핑 채널 쇼 호스트가 꿈인 신현수(가명·26·여) 씨는 지금까지 두 차례 쇼 호스트 아카데미를 수강했다. 첫 번째 3개월 과정의 수강료는 170만 원, 심화 과정인 두 번째 과정의 수강료는 180만 원이었다.

윤경선(가명·25·여) 씨가 다니는 항공승무원 양성 과정은 3개월 수강료가 120만 원이다. 메이크업 박스 구입비 40만 원과 회당 60만∼80만 원의 프로필 사진 촬영비가 들어간다.

취직을 위한 사교육이 구직자들의 필수과목이 되고 있다.

쇼 호스트나 스튜어디스가 되기 위한 수강료가 비싸 보이지만 대기업 입사를 위해 지출하는 취업 사교육비도 이에 못지않다. 취직을 위해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구직자가 많기 때문이다.

○ 고학력일수록 어학연수 비율 높아

본보와 인크루트의 조사 결과 취업 사교육을 받았다고 답한 구직자와 직장인의 20.1%는 “어학연수를 다녀왔다”고 답했다. 이들의 평균 어학연수 기간은 13개월, 어학연수에 들어간 비용은 1579만 원이다. 대기업에서 영어 면접 비중이 높아지면서 단기 어학연수도 성행하고 있다.

조사 결과 아직 직장을 잡지 못한 구직자들의 평균 어학연수 기간과 비용은 12개월, 1445만 원인 데 비해 이미 직장을 잡은 취업자들은 취직하기 위해 15개월 동안 1907만 원의 어학연수 비용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직자와 직장인을 막론하고 학력이 높을수록 어학연수를 다녀온 비율이 높았다. 고졸 이하 구직자, 직장인은 5.9%만 어학연수를 다녀왔지만 석·박사 이상은 35.3%가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어학연수 비용을 포함시켜 취업 사교육비 평균을 내면 고졸 이하는 219만 원, 대졸은 580만 원, 석·박사 이상은 933만 원이었다.

이광석 인크루트 대표는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불안감 때문에 학원이나 자격증 등 사교육에 의존하는 구직자가 늘어나고 있다”며 “고학력 인플레이션과 일자리 부족으로 취업 사교육은 더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 일부 학원에선 일대일 과외

대기업 입사를 위한 ‘족집게 과외’도 성행하고 있다. 취업 전문업체 커리어는 최근 ‘올해의 취업 뉴스’로 ‘족집게 과외 열풍’을 꼽았을 정도다. 대기업별 직무적성검사의 모의시험을 제공하거나 면접 준비에 도움을 주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는 것.

커리어 김기태 대표는 “취업난 속에 기업들의 채용 전형이 까다로워지면서 대기업 취업에도 사교육이 성행하고 있다”며 “삼성그룹 직무능력시험(SSAT) 등 대기업을 겨냥한 강좌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스피치 학원은 ‘일대일 과외’로 면접에 대비하는 요령을 지도해 주기도 한다.

언론사 시험도 족집게 과외가 성행이다.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는 대학생 김민정(24·여) 씨는 “언론사별로 채용 공고가 나면 기출문제를 분석하는 속성반이 개설된다”며 “1개월 과정의 수강료가 약 20만 원인데도 수백 명이 몰려 자리가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 ‘정형화된 준비’는 역효과 날 수도

일반적으로 취업 사교육을 받는 구직자들은 월평균 영어 공부와 자격증 획득에 각각 12만 원을 컴퓨터 공부와 면접 등 취업 교육에 각각 8만 원과 4만 원을 쓴다고 답했다. 각종 전문교육 등에도 월평균 11만 원을 썼다.

사교육에 의한 ‘획일적인 취업 준비’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우곤 취업전망대 연구소장은 “요즘 사교육에 익숙해져 취업도 사교육으로 풀어보려는 대학생 구직자를 많이 본다”며 “특히 면접을 앞두고 마음이 급해진 학생들이 취업 컨설팅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면접관이 가장 싫어하는 유형이 질문에 외워서 대답하는 구직자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정형화된 교육으로 무장한 구직자는 오히려 점수를 깎일 수 있다”고 충고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