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SK남산빌딩 20층.
고려대 경영학과 유관희(회계학) 교수의 말이 끝나자 강의실 가득 “손익계산서, 자본변동표, 대차대조표, 현금흐름표…”라며 웅얼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얼핏 대학 경영학과 1학년 강의실 풍경처럼 보이지만 강의실에는 신입생 대신 40, 50대 회사원 62명이 앉아 있었다.
이들은 SK그룹이 중소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SK 상생 아카데미’ 1기 수강생들이다. 10월부터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경영학 수업을 듣고 있다. 8주차를 맞는 7일 모든 과정이 끝난다.
○ “협력사 인재 키워야 대기업도 성장”
지난해 청와대에서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회의’가 열린 뒤 주요 그룹은 다양한 상생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SK그룹은 협력사의 인적(人的) 역량을 높이는 데 초점을 뒀다. 중소기업들은 직원들을 교육할 여유가 없고 기회를 만들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SK아카데미 안정환 차장은 “중소 협력사 인재를 잘 키워야 함께 일하는 대기업도 발전할 수 있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당초 ‘유머 경영’같이 재미있는 특강을 중심으로 강좌를 구성하려고 했지만 협력업체의 반응은 달랐다. 협력사 임직원들은 대부분 “기초적인 경영학 이론을 배우고 싶다”는 의견을 냈다. 그래서 이 과정을 ‘약식 경영학석사(MBA) 과정’으로 꾸미기로 했다.
강사진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명문 대학 경영학과 교수들이다. 강사진과 강의 수준은 SK그룹의 임원 연수와 비슷하게 했다.
○ “생색용 아니냐”에서 ‘뜨거운 호응’으로
SK그룹에서 ‘상생 아카데미’를 만든다고 했을 때 협력업체들은 “또 생색용 아니냐”며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막상 강의가 시작된 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매주 강의가 끝날 때마다 SK그룹이 조사한 수강생 만족도는 5점 만점에 평균 4.4점. SK그룹 임직원 연수교육 만족도는 잘 나와야 3.8점이다.
출석률은 평균 98%다. 업무상 꼭 필요한 출장이 아니면 빠지는 일이 없다. 울산 진주 경주 등에서 비행기를 타고 통학하는 수강생도 있다. 그만큼 중소기업에서 교육에 대한 갈증이 컸다는 증거다.
촉매제조업체인 나노의 신동우 사장은 “우리 같은 작은 규모의 기업에서 이 정도 수준의 교육을 받을 기회는 흔치 않다”면서 “진정성이 엿보이는 상생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은 1년에 1차례 열 계획이던 이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이 좋아 내년부터 1년에 2차례로 확대할 계획이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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