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광고의 판매를 전담해 온 방송광고공사 대신에 복수의 미디어렙을 도입하자는 내용이다. 법안심사소위가 세 차례 열리자 종교라디오 5개사 사장단은 최근 ‘미디어렙 복수화 논의의 즉각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내고 시민단체와 지역방송이 참여하는 ‘공익성 광고제도 확립을 위한 연대회의’를 구성했다.
필자는 미디어렙 도입 방안과 법안에 대해 깊이 관여하고 검토한 바 있다. 미디어렙 도입을 전반적으로 검토한 문화관광부의 광고분과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회의를 진행했고 정병국 의원실에서 주최한 ‘방송광고 판매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발제를 했다. 문화관광위원회 전문위원들과도 법안의 특징 및 독소조항에 관해 깊이 있는 토론을 했다.
미디어렙 도입에 대한 논의는 세 흐름으로 나뉜다. 하나는 완전경쟁론에 따라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가 각각의 미디어렙을 갖게 하자는 주장이고 또 하나는 제한경쟁론으로서 공영방송사(KBS, MBC)와 민영방송사(SBS)의 영역을 구분해 2개의 미디어렙을 허용하자는 주장이다. 마지막 하나는 방송광고공사의 현행 유지론이다. 현 단계에서 방송광고판매시장의 경쟁체제 도입은 사실상 지상파의 직접 영업을 허용해 방송의 공공성과 매체의 균형 발전을 훼손할 우려가 크다는 설명이다.
지상파만 살찌울 허울 좋은 경쟁
방송광고판매제도는 방송의 공공성과 시장경쟁원리의 조화를 도모하면서 단계적으로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그럼으로써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고 경영 악화가 예상되는 매체(군소 방송사 등)에 대한 지원 방안을 마련해 언론의 다양성 및 매체 간 균형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미디어렙을 둘러싸고 그동안 깊이 있는 연구와 치열한 토론이 있었다. 상정 가능한 거의 모든 대안을 모색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럼에도 미디어렙 도입 문제가 늘 벽에 부닥친 이유는 방송광고시장의 경쟁체제를 성급하게 도입할 경우 △매체 간(신문매체와 방송매체 사이) 불균형 △매체 내(공·민영 방송 사이) 불균형 △방송에 대한 자본의 영향력 증대 △종교방송사 등 군소 방송사의 경영 악화로 인한 방송의 다양성 저하 △중소기업이 방송광고를 할 수 있는 기회 상실 △방송광고 요금의 인상과 이를 통한 물가 불안 등 여러 문제점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방송광고공사라는 독특한 제도가 1981년 처음 도입된 뒤 지상파방송사를 중심으로 상당 기간 폐지론이 나왔다. 그러나 방송의 공공성 확대 등 여러 차원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준다는 점에서 존재 이유가 설득력을 가졌다. 따라서 경영 혁신을 위한 방송광고공사법의 개정을 거쳐 ‘개혁을 통한 유지론’을 실천하고 검증할 필요가 있다.
단, 방송광고공사 체제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시장경쟁 원리의 도입은 내부적으로 강화돼야 한다. 즉, 시장 원리에 따른 아이디어를 경쟁적 차별적으로 도입하고 실행하는 제도로서 본부제를 도입하고 이에 따른 독립성과 경쟁성을 제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공성-균형발전 훼손 우려
문화관광부 광고분과위원회에서도 “일단 방송광고공사 체제에서 경쟁체제로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만큼 이 체제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개혁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차후에 공·민영체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방송광고공사의 ‘개혁’ 성과를 점검한 뒤 새롭고 차분하게 미디어렙의 도입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다.
1998년 미디어렙 도입 논의가 시작된 지 8년이 지났다. 앞으로의 시간도 빠르게 지나간다. 지상파를 비롯한 관련 당사자들은 긴 호흡에서, 욕심을 억누르고, 작은 변화라도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다. 발전은 리볼루션(revolution·혁명)이 아니라 이볼루션(evolution·개선)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김민기 숭실대 교수·언론홍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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