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원 무너질수도” 수출기업 환율공황

  • 입력 2006년 12월 7일 02시 59분


“떨어져도 너무 떨어진다” 달러당 원화 환율이 9년 1개월 만에 920원 아래로 떨어졌다. 6일 서울 중구 을지로2가 외환은행 본점에서 외환 딜러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환율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전영한 기자
“떨어져도 너무 떨어진다” 달러당 원화 환율이 9년 1개월 만에 920원 아래로 떨어졌다. 6일 서울 중구 을지로2가 외환은행 본점에서 외환 딜러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환율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전영한 기자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9년 1개월여 만에 처음 달러당 910원대로 하락(원화가치는 상승)했다.

환율이 연일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달러당 900원 선도 무너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급격한 환율 하락은 해외시장에서 우리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려 ‘연간 3000억 달러 수출 시대’를 연 한국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 있다. 이미 수출기업들에는 비상이 걸렸다.

○ 원-엔 환율도 800원 붕괴

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엿새(거래일 기준) 연속 하락하면서 전날보다 7.9원 급락한 916.4원으로 장을 마쳤다.

원-달러 환율이 920원 밑으로 내려간 것은 1997년 10월 22일(915.1원) 이후 처음이다. 최근 엿새 동안 환율은 14.4원(1.55%)이나 떨어졌다.

일본 엔화에 대한 원화 환율도 전날보다 1.05원 떨어진 100엔당 799.83원으로 다시 800원 선이 무너졌다.

외환시장 일각에서는 세계적인 달러화 약세 추세가 이어질 경우 이르면 연내, 늦어도 내년 초에는 달러당 900원 선마저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환율 하락은 수입 물가를 떨어뜨려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되고 해외여행에도 유리한 측면이 있지만 전체 국가경제 측면에서는 부정적 영향이 훨씬 크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원화 강세로 수출과 경기가 나빠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주가와 채권금리도 떨어졌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6.86포인트(0.48%) 빠진 1,413.73으로 마감됐으며, 국고채 3년물 금리도 연 4.73%로 전날보다 0.04%포인트 하락했다.

재정경제부 고위 당국자는 “외환당국은 필요하다면 환율 안정을 위해 언제든 조치를 취할 것이며 이를 위한 실탄은 충분하다”며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 왜 원화강세인가?

최근 원-달러 환율 하락은 미국 경기 부진으로 달러화가 국제 외환시장에서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유럽과 일본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경기 부양을 위해 내년 3월 연방기금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반면 유럽과 일본은 경기 회복과 이로 인한 물가상승 부담을 덜기 위해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있다.

현재 국제 투자자금은 고금리를 쫓아 달러화를 팔고 대신 유로화나 엔화를 사고 있다. 이런 자금 흐름이 달러 약세의 원인이 되고 있다.

또 국내 외환시장에서 기업들이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화를 서둘러 판 것도 한 원인이 됐다.

수출기업들은 환(換)위험을 줄이기 위해 ‘선물환 매도’를 하고 있다. 선물환을 매도하면 수출기업은 미래의 가상 환율을 적용해 은행에서 수출대금을 원화로 받아간다. 대신 은행은 미래에 들어올 달러만큼 외국에서 달러를 빌려 시중에 내다팔고 이런 과정에서 시중에 달러 공급량이 늘어 환율이 하락하고 있다.

원-엔 환율 하락은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해 원화가 엔화보다 상대적으로 더 강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 잠 못 드는 수출기업

스웨터 제조업체인 한아코퍼레이션은 최근 일본으로 가는 수출물량을 대폭 줄이는 대신 국내 판매물량을 늘렸다. 원-달러 환율의 가파른 하락으로 수출 채산성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회사 김선철 사장은 “환율 급락 때문에 인건비가 싼 외국으로 공장을 옮기는 등 대책을 세우지 않은 중소기업은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원화 강세로 전자, 조선 등 수출기업들은 해외에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LG전자는 내년 사업계획의 전제조건이 되는 원-달러 환율 예상치를 900원으로 잡았지만 최근 가속도가 붙은 환율 하락세라면 수정작업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업계도 최근 환율 급락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고 있다. 평상시 환위험 관리를 하고 있지만 하락세가 장기간 이어지면 일정 부분 환율하락으로 인한 피해가 있을 것으로 우려한다.

현대중공업 측은 “내년 사업계획을 세우면서 원-달러 환율 930∼950원 선을 기준으로 했는데 실제 환율이 이 수준보다 더 떨어져 목표 수정이 불가피할 것 같다”고 털어놨다.

환율 하락으로 한국 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인 무역수지 흑자규모가 줄어들고, 국내총생산(GDP)이 감소하는 등 거시경제지표가 악화될 수 있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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