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본격적인 인사 철을 앞둔 요즘 각 기업 임원은 이 말을 되새김질하며 행동거지를 조심하고 있다.
기업의 별로 불리는 임원은 명예와 경제적 보상이 따르는 자리긴 하지만 ‘파리 목숨’이기도 하다. 임원은 ‘임시 직원’의 약자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특히 올해는 어려워진 경영환경으로 기업실적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
행여 쓸데없이 구설에 올라 낙마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임원이 늘면서 각 기업의 연말은 조용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 “인사 직전엔 잠자코 있는 게 상책”
최근 삼성전자 홍보팀은 보도 자료를 내면서 부랴부랴 문구를 바꾸는 ‘소동’을 벌였다.
이 회사가 외국 우체국 2400여 곳에 자사(自社)의 대형 액정표시장치(LCD)를 공급한다는 ‘쾌거’를 담은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업무의 총괄 임원은 홍보팀에 당초 보도 자료에 들어간 자신의 이름 대신 부하 실무자 이름으로 바꿔 줄 것을 요청했다. 어찌된 일일까.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인사 철을 앞두고 ‘튀면 죽는다’는 생각이 임원들 사이에 퍼져 있다”면서 “잘하건 못하건 인사 직전에는 잠자코 있는 게 상책”이라고 했다.
이 같은 이유로 최근 모 언론사와 선술집에서 ‘음주 인터뷰’를 한 삼성전자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위로부터) 평가점수가 상당히 깎였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경위야 어쨌든 소주잔을 앞에 둔 사진까지 찍어가며 어릴 적 장래희망 등 신변잡기를 밝힌 그의 인터뷰는 인사를 앞둔 시점에서 지나치게 ‘오버’였다는 것이다.
한화의 한 임원은 “최근 새로운 기업이미지(CI)를 발표하고 내년부터 계열사 6곳의 사명(社名)까지 바꾸는 까닭에 임원들이 다가올 변화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며 “새로운 일을 벌이지 않기 때문에 거의 침묵에 가까울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 몸은 사리지만 인사 정보에는 촉각
요즘 각 기업에서는 평소와 달리 하루에도 여러 차례 휴대전화로 은밀히 통화하는 임원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좌불안석이 된 임원들이 서로 인사에 관한 정보를 나누는 것이다.
하지만 은밀한 인사 정보 나누기가 실제 인사에 별 도움은 되지 않는다고 한다.
SK의 한 임원은 “요즘에는 상시평가와 다면평가 체제라서 임원들이 인사 철에 갑자기 실적을 만회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했다.
LG전자의 한 임원도 “평소에 성과가 부진하던 임원이 인사 철에 갑자기 나서면 오히려 ‘찍히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국내 주요 대기업 임원들의 ‘몸 사리기’는 중견기업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헤드헌팅 회사인 커리어케어의 신현만 사장은 “대기업 임원들이 연말연시 인사 결과를 지켜본 뒤 거취를 정하겠다는 생각”이라며 “이에 따라 대기업 출신 임원을 뽑으려는 중견기업의 인사도 더디게 진행돼 자칫 국내 기업의 생산성이 떨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능력보다 짬밥” 기업 44% 서열승진제 채택▼
국내 기업 10곳 가운데 4곳꼴은 직원 승진에서 연공서열을 가장 중시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취업 전문업체 잡코리아와 헤드헌텅업체 HR파트너스는 국내 기업 인사담당자 341명을 대상으로 인사 및 승진 제도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4.3%가 ‘서열에 따른 승진연한제’를 채택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8일 밝혔다.
업적에 따라 승진을 달리하는 ‘차등승진제도’를 이용하는 기업은 29.3%였다.
직급과 근속연수에 상관없이 업적이 우수한 사람을 승진시키는 ‘발탁 승진제’를 채택하고 있는 기업은 25.5%로 나타났다.
기업 형태별로는 공기업에서 승진연한제 채택률이 56.4%로 가장 높았고, 대기업은 차등승진제(51.0%), 외국계 기업은 발탁승진제(51.0%)를 가장 많이 쓰고 있었다.
인사고과 기준과 관련해 응답자의 49.0%는 “업무 성과를 가장 중시한다”고 답했다.
그 다음으로 △응답자의 23.8%가 ‘개인의 역량’을 꼽았고, △근무태도와 회사에 대한 태도가 각각 8.2% △리더십 및 조직관계 5.3% △어학 능력 및 자격증 3.2% 순으로 나타났다.
‘인사고과에 대한 직원들의 평가’를 묻자 응답자의 50.1%가 “형식적인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고 답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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