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와 재협상 의지 밝힌 국민은행 강정원 행장

  • 입력 2006년 12월 13일 03시 01분


○ “론스타 매각 계약 파기 우리에겐 행운”

올해 8월이었다.

강정원(사진) 국민은행장의 집무실로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애연가(愛煙家)인 강 행장이 자주 창문을 열어 놓은 탓이었다.

불현듯 강 행장은 이 새 사진을 찍어 조류 학자에게 보내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예로부터 길조(吉鳥)로 통하는 천연기념물 황조롱이가 분명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강 행장의 표정은 금세 밝아졌다. 당시는 론스타와의 외환은행 매각 협상이 한창 진행되던 때였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론스타와의 계약은 지난달 파기됐다.

“결국 이 황조롱이는 길조가 아니었던 셈이네요?”

11일 국민은행장실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본보 취재팀이 이렇게 묻자 강 행장은 아주 의외의 답변을 했다.

“아니요. 매각이 연기된 것도 어떻게 보면 우리에겐 행운입니다.”

○ 외국자본 ‘먹튀’ 여론 누그러져 유리

행운이라고? 론스타의 계약 파기를 국민은행이 기다렸다는 말인가?

“기다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만약 론스타가 먼저 파기를 안 했다면 우리로서는 참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그땐 협상을 어떻게 해 볼 여지가 별로 없었거든요.”

외국 투기자본의 ‘먹튀(먹고 튀기)’를 도와준다는 여론이 워낙 따가웠던 만큼 현재로서는 계약 파기가 오히려 홀가분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론스타와의 재협상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그 사람들은 또 팔겠죠. 안 팔 사람들은 아니니까요.”

강 행장은 “어차피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야밤에 몰래 팔아버리지 않는 한 매각 입찰을 다시 한번 추진할 것”이라며 “어떤 시나리오에서도 국민은행에는 기회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재입찰을 하더라도 또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하나금융지주가 인수전에 뛰어들더라도 금융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만큼 터무니없이 높은 금액을 써 내지는 못할 겁니다. 설령 해외에 판다고 해도 그 전에 론스타가 우리 의사를 안 물어볼 이유가 없죠. 우린 아직도 론스타가 보기에 ‘가장 믿을 수 있는 매수자(Creditable buyer)’거든요.”

그는 인터뷰 내내 “기회는 온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강 행장은 지난달 계약 파기 이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되풀이하던 데서 탈피해 이날 인터뷰에서 상당히 구체적이고 진전된 발언으로 외환은행 인수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 “은행권이 대출 위기관리 못 했다”

화제를 부동산 문제로 끌고 갔다. 리딩 뱅크의 은행장은 요즘 집값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강남권 아파트 값은 저도 이해하기 힘듭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심해요. 여기가 미국 맨해튼입니까. 국민소득이 1인당 2만 달러도 안 되는 나라에서 집값이 평당 5000만 원이라뇨.”

강 행장은 요즘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규제에 공감하고 있었다. 또 “지금까지 은행권이 대출 리스크를 관리하지 못한 점도 있다”고 반성하기도 했다.

단순히 금융 감독 당국을 의식한 발언이라면 그의 말은 여기서 끝났을 테다. 하지만 강 행장은 한발 더 나아갔다.

“꼭 은행들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상호신용금고나 캐피털을 생각하면 더 걱정이에요. 그들은 상환 능력 분석도 안하고 대출을 해 줍니다.”

또다시 금융위기가 온다면 그 진원지는 제2금융권이 될 것이라는 말도 했다.

“내 생각엔 이것(주택담보대출)도 꺾일 것 같아요. 이제 집 사고 대출이자에 세금까지 내고도 남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 “동남아 진출 꾸준히 추진할 것”

강 행장에게 ‘취임 후 2년간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과 ‘앞으로 1년간(그의 임기는 내년 10월까지다) 가장 이루고 싶은 업적’을 물었다.

질문은 두 가지였지만 돌아오는 답은 하나였다.

“우리가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1위를 한 것, 그리고 이것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국민은행은 11일 한국생산성본부가 선정하는 국가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은행부문 1위를 차지했다. 고객들에게 불친절하다는 얘기를 들어 온 국민은행으로서는 대단한 변화인 셈.

강 행장은 내년에도 자산 기준 업계 1위 수성에 대해 “전혀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그동안 리딩 뱅크를 유지하기 위해 2년간 여러 가지 투자를 많이 했습니다. 동남아 진출 계획도 꾸준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은행들이 국내에서 자산 늘리기 경쟁을 하다가는 서로 건전성을 해치는 꼴밖에 안 납니다.”

황조롱이가 정말 길조였는지는 곧 판가름 날 것으로 전망된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