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부 사퇴 후 재선거를 앞두고 9개 현장 조직 간에 내분이 극심해질 것으로 보여 노조는 당분간 내홍(內訌)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조합원 4만3000여 명으로 민주노총의 핵심 사업장의 노조가 또다시 도덕성 시비에 휘말리면서 향후 전체 노동운동의 방향에도 이번 사건이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대다수 조합원은 노조 핵심 멤버 중 하나인 총무실장 이모(44) 씨가 노조 규약상 입찰자격(자본금 150억 원 이상)이 없는 업체를 기념품 납품업체로 선정해 준 혐의(업무상 배임과 사문서 위조 등)로 경찰에 구속되자 허탈해하고 있다.
○집행부 진퇴 논란
12일 오전 10시 울산 북구 양정동 현대차 울산공장 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대의원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93차 임시 대의원대회가 열리기 직전 현장에서는 “노조 집행부가 사퇴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일부 대의원은 노조의 자체 납품비리사건 진상조사 보고가 끝난 오후 10시경 “구속된 이 씨 개인이 아닌 집행부 차원의 비리”라며 집행부 퇴진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박유기 위원장은 “집행부와는 무관하다”며 사퇴를 거부하며 버텼다. 그러나 대의원들의 사퇴 요구가 거세지자 박 위원장은 정회를 선언한 뒤 확대간부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박 위원장은 대의원들과 노조 내 대부분의 현장조직이 등을 돌림에 따라 사퇴가 불가피하다고 방침을 정리한 뒤 오후 11시 10분경 재개된 대의원대회에서 “위원장 조기선거를 실시하겠다. 선거 일정은 13일 오전 11시에 열리는 확대간부회의에서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노조 집행부가 사퇴를 거부하다 결국 사퇴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반 조합원들은 “늦었지만 집행부가 잘못을 인정했다”며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였다. 조합원 김모(46) 씨는 “노조 간부가 일반 조합원에게는 명분도 없는 ‘정치파업’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면서 뒤로는 납품업체와 검은 뒷거래를 해 허탈했다”며 “그러나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올해 들어 벌인 13차례의 파업 가운데 6월 26일부터의 임금 관련 파업을 제외한 12차례는 근로조건 개선과 관련이 없는 불법 정치파업이었다.
전 노조 대의원 정모(42) 씨는 대의원으로 활동할 때인 2002∼2003년 12명을 현대차에 취직을 알선해 주고 4억여 원을 받아 지난해 6월 구속됐다. 또 노조가 임금 협상 결렬로 파업을 벌일 때인 올 7월 노조 대의원 백모(40) 씨는 조합원 2명을 상대로 사기도박을 벌여 5000여만 원을 가로챘다가 경찰에 구속됐다.
○다른 노조 간부로 수사 확대
경찰은 구속된 노조 간부 이 씨가 납품업체인 D사로부터 금품을 받았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경찰이 이 씨의 금품수수나 다른 노조 간부의 연루 사실을 밝혀낼 경우 노조 집행부는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도덕성에는 치명타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 노조는 제8대 집행부 때인 2000년 대우자동차 해외 매각 반대 광고를 모 일간지에 실은 뒤 광고비를 회사 돈으로 지급했다가 도덕성 시비에 휘말려 임기 10개월을 남겨 놓고 사퇴한 전례가 있다.
노동계 안팎에서는 현대차 노조의 집행부 퇴진과 도덕성 시비가 민주노총이 현재 벌이고 있는 4대 요구사항 관철을 위한 총파업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대림산업 노조 자진해산 결의
대림산업 노동조합이 올해 5월 민주노총을 탈퇴한 데 이어 최근 노조 해산을 결의했다.
12일 대림산업 노조에 따르면 노조는 7일 총회에서 95.6% 투표에 투표자 90.1% 찬성으로 노조 해산을 결의했다.
노조 대의원들은 ‘노동조합 상생과 협력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조만간 노조를 대체할 협의체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노조 해산 배경은 회사와 노조의 역할에 대한 조합원들의 인식 변화였다.
유종진 노조 사무국장은 “조합원들이 최근 현장에서 다른 회사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노사관계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며 “노조가 아니라 회사가 살아야 근로조건도 향상되고 일터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확산됐다”고 말했다.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산하 건설산업연맹이 개별 회사의 노사관계에 무리하게 끼어든 것도 조합원들의 반발을 샀다.
건설연맹이 올해 3월경 ‘5월 말까지 임금·단체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교섭권을 건설연맹에 넘기라’는 공문을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민주노총 탈퇴와 노조 해산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7일 총회 직전 1416명에 이르던 조합원 대다수는 “투표까지 갈 필요도 없다”며 노조를 탈퇴했고 이날 총회에 참석한 인원은 43명에 그쳤다.
한편 건설연맹은 사측의 부당 노동행위 때문에 노조가 해산됐다며 중앙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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