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구석 경고음… 경제가 심상찮다

  • 입력 2006년 12월 14일 03시 04분


《한국 경제가 심상치 않다. 성장동력이 크게 떨어진 가운데 미국 달러화와 일본 엔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계속 급락(원화가치 급등)하면서 기업 채산성이 빠른 속도로 나빠지고 있다. 경상수지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은행은 물론 제2금융권의 과도한 가계대출로 금융 부문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단기외채 비율도 급증하고 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내년은 외환위기를 맞았던 10년 전(1997년)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다. 가뜩이나 국정 운영의 리더십이 취약한 현실에서 정치 논리가 기승을 부릴 가능성도 높다. 이 때문에 국가적으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외환위기 같은 최악의 형태는 아니더라도 ‘제2의 경제위기’가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경제부총리-은행장, 금융권 부실 걱정

정부 및 민간 분야에서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11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상호저축은행 등에서 무분별하게 주택담보대출을 해 주고 있어 ‘제2금융권발(發)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최근 원화 강세 등으로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현대·기아자동차그룹 고위 관계자는 13일 “경영 여건 악화를 고려해 내년 인력 운용 규모를 올해 수준에서 동결하겠다”고 밝혔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7일 한 조찬강연에서 “경기 둔화, 주택가격 하락 등의 여건 변화가 가계 및 금융권의 부실을 유발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원高 직격탄 기업들 구조조정 움직임

지난해 말 1011.6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13일 현재 922.6원으로 8.8%(89원)나 하락했다. 원-엔 환율도 같은 기간 100엔당 856.13원에서 788.75원으로 7.9%(67.38원) 떨어졌다.

최근 원화 강세 속도는 너무 급격하다. 한국수출보험공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수출 기업들은 원-달러 환율이 평균 894.31원 밑으로 떨어지면 수출을 포기할 생각을 하고 있다.

원화 강세의 직격탄을 맞은 현대차그룹은 내년 신입사원 채용 규모를 올해보다 줄일 계획이다. 또 자발적 이직(移職)으로 생기는 4∼5%의 빈자리도 내년에는 메우지 않을 방침이다.

또 협력업체의 현지 생산 비중을 늘리도록 유도해 납품가를 10% 낮추는 방안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삼성그룹에서도 사업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디스플레이 패널 가격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삼성SDI는 최근 사내에 ‘구조조정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수익성이 낮은 사업의 규모를 축소하거나 폐지하기 위해서다.

주택담보대출 급증… “위험수위 넘었다”

경기 부진과 금리 상승 기조가 맞물리면서 금융위기론도 확산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을 많이 받은 개인의 연체가 늘어 결국 금융권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동산발 금융위기론’이 그 중심에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중 가계의 금융부채는 지난해 말보다 8.6%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국민총소득(GNI)은 5.2%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개인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1.36배에서 1.41배로 높아졌다. 빚 갚을 능력이 떨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앞으로 집값이 오를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보니 가계대출은 계속 증가세다.

11월 말 현재 은행들의 가계대출 잔액은 340조7000억 원으로 지난해 말(304조7000억 원)보다 36조 원(11.8%)이 늘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이 기간에 190조3000억 원에서 213조9000억 원으로 12.4%나 늘었다.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많다.

은행권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올해 들어서만 11월 말까지 44조6000억 원이 늘었다. 지난해 연간 증가액인 12조8000억 원의 세 배를 웃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중소기업 대출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지만 심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묻지 마’ 대출을 일삼으면 금융회사는 물론 전체 금융시스템을 불안하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내년 성장률 하락-경상수지 악화 전망

한은은 최근 내놓은 ‘2007년 경제 전망’에서 내년 경제성장률이 4.4%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일부 민간 경제연구소는 3%대 후반까지 예상하고 있다.

통계청이 13일 내놓은 ‘11월 고용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수 증가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26만7000명에 그쳐 9월 이후 3개월 연속 30만 명을 밑돌고 있다.

경상수지도 내년에는 크게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은은 내년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20억 달러 안팎에 그칠 것으로 내다보면서 국제유가가 다시 급등하면 내년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수출 증가율도 올해 12.9%에서 내년 10.8%로, 설비투자는 올해 7.4%에서 내년 6.0%로, 민간소비도 4.2%에서 4.0%로 내년에는 전 부문에서 성장세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환란때와 ‘환율하락-경상수지 악화’닮았네

… ‘외환보유액 충분-채권국’다르네

《경제 전문가 중에는 요즘 우리 경제의 흐름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사람이 많다. “뭔가 조짐이 좋지 않다”는 말도 자주 나온다. 이 같은 우려의 근거로는 외환위기 직전에 나타났던 몇 가지 현상이 다시 눈에 띄기 때문이다. 환율 경상수지 금리 등의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물론 그때와 다른 부분도 적지 않다. 특히 2300억 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액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버팀목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설사 ‘위기’가 오더라도 외환위기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일단 우세하다.》

○ 환율 경상수지 단기외채비율 등은 닮아

가장 비슷한 점은 환율 하락(원화가치 상승)과 이에 따른 경상수지 악화.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 직전에 원화가치가 급격히 올라가고 경상수지 적자가 늘어나면서 큰 부담을 안았다. 1997년 상반기(1∼6월)의 적자 폭은 101억4000만 달러였다.

최근 외환시장의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 달러화와 일본 엔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하루가 다르게 급락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한때 달러당 920원 선이 무너져 900원 선까지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원-엔 환율 역시 100엔당 790원 아래로 떨어졌다. 경상수지는 크게 악화됐으며 내년에는 적자로 돌아설 개연성도 있다.

단기외채 비율도 심상치 않다. 총외채에서 만기 1년 미만의 단기외채가 차지하는 비율은 올해 6월 말 현재 41.3%다. 외환위기 직전에는 50% 안팎이었다.

외국계 자본의 자금 회수 분위기도 닮아 있다. 여기에 1996년부터 내수경기 침체로 실업률이 조금씩 높아지고 당국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것도 최근의 만성적인 청년실업, 금리 인상과 닮은꼴이다.

공교롭게도 정권 임기 말,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정치적 상황까지 유사하다.

○ 외환보유액이 가장 다른 점

다른 점도 적지 않다.

외환보유액은 외환위기 전해인 1996년 말 332억 달러(1997년 말은 40억 달러)였지만 현재는 2342억 달러로 오히려 ‘과잉 보유’ 논란이 나올 정도다. 당시 한국은 빌려준 돈보다 빌린 돈이 많은 채무국이었지만 이제는 채권국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또 삼성전자 등 일부 글로벌 기업의 경쟁력이 크게 높아진 점, 뼈아픈 경험을 통한 ‘학습 효과’가 있다는 점은 외환위기 때와 다르다.

기업대출이 지나치게 많았던 외환위기 직전과 달리 금융권 대출이 기업과 가계로 분산됐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가계여신 비율이 급증해 ‘가계발(發)’ 금융위기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은 ‘그늘’로 꼽힌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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