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 지난 지금은 ‘학생 디자이너’로 통한다. 대학을 다니면서 본인의 브랜드를 만들어 당당히 대형 백화점에 입점한 정식 디자이너가 됐다.
내년 2월 졸업을 앞둔 이화여대 패션디자인과 이지윤(24) 씨의 얘기다.
○ 겨울 원피스-모직 코트 독특한 디자인 호평
올 7월 1일 이 씨는 본인이 직접 만든 브랜드 ‘하이짐(HYZM)’으로 서울 서대문구 현대백화점 신촌점에 입점했다.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지하 2층 영 캐주얼 매장의 편집매장 ‘씨컨셉(C:concept)’에서 직접 디자인한 옷을 팔기 시작한 것.
이 씨는 “패션 의류업체도 입점하기 힘든 백화점에 나의 브랜드를 내걸고 고객에게 옷을 선보이는 일이 꿈만 같았다”고 말했다.
겨울 신상품으로 내놓은 원피스와 모직 코트는 기성 브랜드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디자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고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도 이 씨에게 먼저 입점을 권하고 있다.
○ 신진 디자이너 공모전서 최고상… 능력 인정받아
지난해 겨울 이 씨는 하루라도 빨리 본인의 브랜드를 만들어 창업하고 싶어 친구들과 힘을 모아 동대문 쇼핑몰에 매장을 냈다. 하지만 몇 달이 안 돼 문을 닫아야 했다.
이 씨는 “매장을 내고 옷만 만들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며 “아무리 옷을 잘 만들어도 검증 안 된 학생을 곱게 보지 않았고 상품기획, 브랜드마케팅 등 디자인 외에도 비즈니스에 대한 전문성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올 2월 현대백화점이 주최한 ‘신진 디자이너 공모전’에 참여해 전문 디자이너들을 물리치고 최고상을 받았다. 앙드레 김 등 심사위원들은 이 씨의 디자인에 대해 디테일이 없는 심플함, 남들과 전혀 다른 독창성이 있다고 평했다.
○ 샛별 돕는 ‘선생님’ 바이어 만나 1인 3역 성공
공모전을 통해 이 씨는 현대백화점 여성캐주얼팀의 강명대 바이어를 만났다. 그의 공식적인 업무는 신진 디자이너의 창업을 위해 실무를 지원하고 컨설팅하는 일.
강 바이어는 “디자이너들은 고객 조사나 시장 분석, 리스크 관리 등 경영 마인드가 약하다”며 “창업을 위해 이런 부분을 도와준다”고 했다.
그는 “유통업계가 한국 패션계를 이끌어 갈 신인 디자이너를 발굴, 육성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 매출 25억 원을 올리는 유명 브랜드 매장을 없애고 이 씨 등 신인 디자이너에게 그 자리를 과감하게 내준 것도 이런 취지에서 나왔다.
강 바이어의 코치를 받으며 이 씨는 브랜드 출시를 준비하는 패션회사 사장, 옷 만드는 디자이너, 졸업반 대학생 등 1인 3역으로 살았다. 수업을 듣다가 원단에 이상이 있다는 공장의 연락을 받고 뛰쳐나가기 일쑤였다. 이 씨는 “점차 매장을 늘린 뒤 내년에는 해외 컬렉션에도 참가할 계획”이라며 “한국 최고의 패션 브랜드로 키운 뒤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게 장기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