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쏟아지는 일거리에 점심 약속도 미룬 채 노트북PC와 씨름하는데 갑자기 불이 꺼져버렸다.
회사 측이 전기세를 아끼려고 오후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 동안 사옥 전체 형광등을 끈 것이다. 8층 높이의 주차 타워도 출퇴근 시간 외에는 전등을 꺼두고 있다. 1∼3층 에스컬레이터의 운행시간도 단축했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몸부림은 영업소로도 이어졌다. 기아차는 2년 전에 비해 영업소 판공비를 절반가량 줄였다. 경기도 성남시의 한 영업소 직원은 “낮에는 가능하면 온풍기를 끈다”며 “2년 전만 해도 송년회를 호텔에서 했는데 올해는 삼겹살 집에서 조촐히 치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재계 서열 2위인 현대차그룹의 겨울나기 풍경이다.
이 그룹은 최근 대내외 경영환경이 악화되자 ‘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는 심정으로 비용절감에 나섰다.
하지만 사측의 긴축경영 분위기는 노동조합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올해만 해도 수십일 간의 파업으로 2조3000억 원가량의 생산 차질을 빚은 노조는 여전히 ‘파업 진행형’이다.
11월 중순부터 최근까지 민주노총 총파업 지침에 따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등을 외치며 현대차는 8차례, 기아차는 2차례 부분파업을 강행했다.
이런 난리 속에 현대차 노조는 노조간부 납품비리 사건으로 내년 1월 새 집행부 구성을 위한 선거를 치러야 한다. 기아차 노조도 이달 20일 2년 임기의 새 위원장을 뽑는다.
노조원들은 새 집행부에 ‘새로운 것’을 기대하진 않는 분위기다.
기아차의 한 노조원은 “노조위원장 선거라는 게 어차피 몇몇 계파들이 돌아가며 나눠먹는 거라 별 기대를 안 한다”고 푸념했다.
새 집행부가 사측의 비상경영에 동참하길 기대하긴 어려울 듯싶다.
다만 “새해에는 정치 파업만이라도 안 했으면 한다”는 노조원과 국민의 희망을 외면하지 말기를 간곡히 부탁하고 싶다.
이종식 경제부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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