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고액권 발행에 강력히 반대해 온 재정경제부가 여야 정치권의 합의를 전제로 발행을 검토하겠다는 쪽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르면 2008년 말 또는 2009년 초부터는 10만 원짜리 자기앞수표를 대체할 고액권이 유통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 경제의 규모 확대 등을 감안할 때 지금처럼 1만 원을 최고액 지폐로 하는 것은 한계에 이르렀다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일각에서는 뇌물 등 ‘부패의 단위’도 커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 재경부 “여야 합의하면 반대 안 해”
임영록 재경부 차관보는 2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국회에서 논의가 급진전되고 있는 만큼 (고액권 발행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국회의 방침이 결정되면 관계부처 및 기관과의 협의를 거쳐 후속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액권 발행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던 한국은행은 재경부의 방향 전환에 만족하는 분위기다.
정남석 한은 발권정책팀장은 “내년 1월 22일에 선보이는 새 1만 원권과 1000원권용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만드는 업체들에 고액권 발행을 염두에 두고 새 ATM을 만들라고 한 만큼 약간 개조만 하면 고액권도 ATM에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여야는 고액권 발행 자체에 대해서는 의견 일치를 봤다. 그러나 당장 고액권을 선보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폐에 실릴 인물, 도안, 색상의 결정, 인쇄 등 준비 과정에만 2년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 고액권 왜 발행하나
1만 원권은 1973년 처음 도입됐다. 이후 33년간 한국의 경제 규모가 140배 성장했고 소비자물가는 12배 올랐다. 이에 따라 액면가치가 크게 하락했다.
한은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한국을 뺀 29개국 최고액권의 평균가치는 35만 원 정도다. 세계 212개국 중 한국보다 최고액권의 액면가치가 낮은 나라는 소말리아 몽골 수단 등 29개국뿐이다.
연간 10억 장 정도 발행되는 10만 원권 자기앞수표는 평균 10일 정도 유통된 뒤 은행에 돌아오면 폐기된다. 자기앞수표의 발행, 관리비용으로만 연간 4000억 원 정도가 들기 때문에 수명이 긴 고액권이 필요하다고 한은은 주장한다.
하지만 고액권 발행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성명을 통해 “고액권 발행은 경제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키고 수표 발행 비용의 절감을 웃도는 사회적 부패를 가중시킬 것”이라며 정치권의 논의 중단을 촉구했다. 또 반대론자들은 신용카드 등 전자화폐의 사용이 충분히 확산돼 현금의 필요성이 크게 줄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 새 화폐의 모양은
고액권 도안에 쓰일 인물 후보로는 김구 정약용 신사임당 유관순 등이 거론되고 있다.
고액권의 크기는 이미 정해져 있다.
한은은 올해 초 선보인 새 5000원권부터 세로 길이는 68mm로 고정하고 가로 길이만 다르게 만들고 있다. 1000원권은 136mm, 5000원권은 142mm, 1만 원권은 148mm. 따라서 5만 원권, 10만 원권은 각각 154mm, 160mm가 될 전망이다.
5만 원권은 붉은색 노란색 황금색 등 따뜻한 색상, 10만 원권은 푸른색 청보라 회색 등 차가운 색상이 검토되고 있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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