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국, 자기네 法은 손 안 대고 FTA 하자는 건가

  • 입력 2006년 12월 29일 00시 18분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반(反)덤핑 관세제도 개선 등 무역구제(救濟)에 관한 한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통보해 왔다. 무역구제는 우리 측 김종훈 협상대표가 “만약 미국이 이를 안 받아들이면 협상이 결렬될 것”이라고 강조 해온 사항이다. 미국은 전체 협상 자체는 계속하겠다고 밝혔고 한국 역시 판을 깰 생각은 없어 보이지만, 협상이 위기를 맞은 것은 분명하다.

우리 정부의 요청을 받아 한미 FTA 협상을 시작한 미국이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하더라도 무역구제를 거부한 미국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 한국은 미국의 핵심 관심사항인 자동차, 의약품, 환경, 노동 등에서 상당한 양보 의사를 비쳤다. 그런데도 미국은 지금까지 양보한 것이 거의 없다. FTA 반대론자들은 농산물, 금융, 서비스, 영화 등의 개방을 문제 삼지만 사실 이런 것들은 우리 스스로 구조조정할 필요가 있는 산업이다. 반면 무역구제는 한국의 핵심 관심 사항으로 미국의 불공정한 제도를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FTA의 실익(實益)이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미국의 반덤핑 관세는 국제기준에도 어긋난다. 우리 측 요구사항은 미국이 이스라엘 등 일부 국가에는 허용한 것이기도 하다. 당초 우리는 무역구제와 관련해 15개항의 개선을 요구했으나 미국 협상단의 처지를 고려해 6개항으로 줄였다. 그런데도 미국은 “무역구제는 법 개정 사항인데 법은 손 못 댄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우리도 FTA 때문에 많은 국내법을 고쳐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우리는 법을 고치는데, 미국은 법에 손도 안 대겠다면 일방적이지 않은가.

미국으로서도 한미 FTA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제외하고는 가장 큰 무역상대와 맺으려는 FTA다. 다자간 협상을 제외하면 지리적으로 이웃에 있지 않은 ‘대형 시장’ 간에 진행되는 ‘사상 최대의 개방협상’으로, 세계통상의 구도를 바꿀 수도 있다.

최근의 난관에도 불구하고 내년 1월 15일 서울에서 6차 협상이 시작된다. 양측은 이제라도 호혜(互惠)정신을 살려 상생의 길을 찾기 바란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