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좋아하는 게 죄? 쓰는법 모르는 게 죄!

  • 입력 2006년 12월 29일 03시 00분


■ 물질만능주의 해법은

조선시대의 ‘팁(Tip)’은 ‘행하(行下)’로 불렀다. 19세기 말 인력거를 탄 양반들은 목적지에 도착하면 인력거꾼에게 행하를 주었다. 긴 젓가락으로 ‘더러운’ 돈을 집어서 건넸다. 돈에 대한 한국인의 과거 태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풍경이다.

돈을 금기시하는 유교적 전통은 우리에게 일종의 사회적 강제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사랑’하지만 드러내기를 꺼리는 ‘모순적 연애’를 했다. 그 결과 어두운 곳에서 검은 돈이 자랐고, 그 돈이 사회적 네트워크를 장악했다.

한국인의 돈에 대한 이중적 태도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무너졌다. 사회 안전판이 무너진 상황에서 돈은 실패와 절망을 막기 위해서라도 필요했다. 사람들은 욕망에 솔직해지고 진지해졌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이 2000년 한 해에만 100만 부나 팔려 나갔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 그게 나쁜 일인가? 물질만능주의 폐해는 돈에 대한 솔직함 때문이 아니라 다루는 기술의 부족 때문에 생긴다. 돈을 벌고 쓰는 일이 인격과 어떻게 연관되어야 하는지를 배우거나 토론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돈에 대해 솔직한 미국인들의 기부문화를 보라. ‘억만장자의 자선(Billanthropy)’이란 신조어를 만든 워런 버핏이나 자선에 전념하기 위해 은퇴하겠다는 빌 게이츠만 있는 게 아니다. 50달러 정도의 소액기부를 하는 보통 사람이 많다. 한국은 월소득 600만 원 이상의 상위 10% 소득자 중 51.3%가 1년에 단 한 번도 기부금을 낸 적이 없다.

한국도 천민자본주의 시대를 벗어나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벼락부자를 꿈꾸기보다 여유 있는 삶을 위한 장기적 투자전략을 권하는 책이 많이 팔린다. 또 돈맥(脈)을 위해서가 아니라 능력의 사회 환원을 위한 실험적 포럼(forum)이나 멘터-멘티 네트워크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결핍을 채우려는 욕망이 아니라, 자아와 인격을 성장시키려는 욕망에 솔직해지는 사람이 더 많이 생길 때 돈은 자기 몫을 하게 될 것이다.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