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29일 ‘과천블루스’(지식더미)를 출간하는 산업자원부 무역위원회 산업피해조사팀의 이경호(59·사진) 서기관. 그는 1976년 옛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을 시작해 재정경제부를 거쳐 산자부에서 근무 중이며 이달 31일 퇴직한다.
이 서기관은 이 책에서 중앙정부의 정책 실수와 부정부패 사례, 비합리적 관행을 근무 일지 형식으로 공개했다. 물론 그가 이 책에서 주장한 내용의 실체적 진실은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곳곳에 충격적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는 부동산 개발 정보가 어떻게 새나가는지를 이렇게 묘사했다.
“건설교통부는 택지 개발을 위해 평소 산하 연구기관에 신도시개발 관련 용역을 주고 있어요. 용역기관은 조사가 끝나면 보고서를 건교부에 제출하지요. 그런 후 입소문을 통해 관련 개발정보가 좍 퍼져 건교부 직원들은 다 알게 되고, 이 정보를 자기 친인척에게 알려주면서 땅 구입을 권하는 겁니다.”
그는 또 이런 신도시 개발용역 보고서는 개발 착수 5년 전부터 일부 부동산 중개업소를 돌아다녀 정보를 미리 안 사람들은 땅 구입을 끝마치고 정부의 공식발표가 있은 뒤 막대한 매매차익을 얻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공공요금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책정되는지를 ‘시청료 2500원’의 비밀을 통해 공개했다.
1981년 컬러TV 방송 시청료를 결정할 당시 담당업무를 맡은 저자는 원가를 분석해 한달 시청료로 1100원이 적당하다는 의견을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방송국이 집요한 로비를 벌인 결과 월 2500원으로 확정됐다고 그는 주장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986년 국민연금이 50년 정도만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2049년에는 고갈된다는 보고서를 청와대에 내고 법 시행을 3년 정도 연기하자고 건의했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의 선거공약이라는 이유로 그대로 추진됐다는 것이다.
이 밖에 매년 엄청난 액수의 판공비와 출장비가 ‘가라(가짜) 공문’으로 집행됐다거나, 200만 원짜리 명패를 만드는 차관 이야기와 과거 정부 때 특정지역의 ‘싹쓸이 인사’, 청와대가 부적격하고 무능력한 대통령 가신(家臣)들의 소굴이라고 주장한 대목도 파장을 일으킬 여지가 있다.
그는 또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 과제는 ‘규제를 없애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1987년 옛 상공부가 기업을 규제하는 7개 법률을 없애면서 지금의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포스코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금융 부문에서 세계적인 기업이 안 나오는 이유도 여전히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이 서기관은 현 정부의 혁신을 ‘우수마발(牛수馬勃·소의 오줌과 말의 똥) 혁신’으로 규정했다. 무역위원회에 근무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대책 수립에 골몰하는 저자에게 ‘혁신 과제’를 요구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28일 밤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재 진행 중인 참여정부의 혁신은 한마디로 중심이 없다”고 비판했다.
또 그는 “책에서 언급했던 부정적 측면들은 공무원 사회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많이 사라졌다고 생각한다”며 “과거의 부정적인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후배 공무원들이 더욱 성숙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썼다”고 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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