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의 또다른 환상… 해외펀드 열풍

  • 입력 2006년 12월 30일 03시 00분


“제발 제 돈 좀 받아주세요.”

베트남 펀드 관련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한국투신운용 조동혁 글로벌운용본부장은 지난달 한 개인투자자에게서 애원에 가까운 하소연을 들어야 했다.

“베트남 펀드 신청을 마감한 다음 날 한 아주머니가 3억 원을 들고 회사로 찾아왔습니다. 베트남에 투자할 기회를 벼르고 별렀는데 우리 회사 펀드가 나왔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았다는 겁니다. 결국 마감이 돼 어쩔 수 없었죠.”

이 투자자만이 아니다. 최근 해외 펀드 투자 열기가 심상치 않다. 펀드 투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온통 해외 펀드 얘기뿐이다. 열기가 너무 지나쳐 ‘묻지 마 투자’로 번질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문제는 해외 펀드는 대표적인 ‘고수익 고위험’ 펀드라는 점. 많은 증권전문가는 인도 베트남 등 신흥시장(이머징마켓)의 주가는 워낙 들쭉날쭉해 증시가 폭락했을 때 원금 손실 등 투자자들의 집단 피해가 우려된다며 경각심을 높여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 국내 펀드 깨고 갈아타기 성행

회사원 나영선(29) 씨는 올해 초 중국 펀드 2개와 인도 펀드 1개에 각각 500만 원을 거치식으로 투자해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중국 펀드는 12월 말 현재 45%, 인도 펀드는 36% 정도의 수익을 냈다.

나 씨는 “성과가 워낙 좋아 앞으로 투자금을 대폭 늘릴 생각”이라고 했다.

펀드평가회사 제로인에 따르면 올해 해외 펀드 투자액은 21일 현재 12조1002억 원으로 올해 초 3조8293억 원에 비해 216% 증가했다.

국내 펀드를 환매(중도 인출)해 해외 펀드로 갈아타는 투자자들도 크게 늘었다.

6월 1조8000억 원에 이르던 국내 주식형펀드 월 증가액은 11월 3분의 1로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해외 펀드는 800억 원에서 1조3000억 원으로 급증했다.

지지부진한 국내 증시에 실망한 국내 투자자들이 중국 인도 등 해외 시장으로 ‘말’을 갈아탄 것이다.

○ 태국 증시 폭락… 수익률 반토막

중국 상하이지수는 지난해 말 1,161.05에서 올해 2,343.66(22일 기준)으로 101.86% 급등해 세계 주요 증시 가운데 상승률 1위를 차지했다. 인도 주가는 43.35%로 5위였다.

이들 나라에 투자한 펀드의 수익률이 높아지면서 증시 주변 자금이 중국과 인도 등 신흥시장으로 모이는 선순환이 이뤄진 셈이다.

해외 펀드 자금의 4분의 1에 이르는 24.3%가 중국에, 10.8%는 인도에 집중됐다.

해외의 자산운용사들이 세계 시장에서 판매하는 역외 중국펀드에도 한국 투자자들이 주요 고객으로 부상하고 있다.

16개 나라에서 판매하는 템플턴자산운용의 ‘중국펀드A’는 순자산 규모가 9659억 원인데 이 중 절반에 가까운 4310억 원어치를 한국 투자자에게 팔았다.

최근엔 베트남이 해외 펀드 열풍의 새로운 핵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국투신운용이 11월 말 내놓은 베트남 펀드 3종은 불티나게 팔리면서 한 달간 2947억 원이 몰렸다. 이는 베트남 증시 시가총액(12조2660억 원)의 40분의 1에 이르는 규모다. 한국에서 설정된 베트남 펀드가 베트남의 증시를 쥐고 흔들 정도라는 뜻이다.

그러나 많은 증권 전문가는 초보 투자자들이 정치, 경제적 불안 요인이 남아 있는 신흥시장에 무리하게 큰돈을 넣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2000년에 문을 연 베트남 증시는 상장기업이 기껏해야 130여 개사로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유아기’ 수준의 증시다.

18일 외국인들의 투자제한조치 등 갑작스러운 통화정책 발표로 하루에 16% 폭락한 태국 증시는 신흥시장의 위험성을 잘 보여 주는 것이다. 연초 대비 20%가 넘었던 태국 관련 3개 펀드 수익률은 이날 폭락으로 순식간에 반 토막이 났다.○ 한곳에 돈 몰아 넣는 것은 위험

지난해 말부터 5개월 동안 인도 펀드에 400만 원을 넣었던 직장인 이동주(31) 씨.

그는 TV 광고를 보고 인도 펀드에 가입했다. 하지만 가입 후 펀드 수익률이 인도 증시 평균에도 따라가지 못하자 불안한 마음이 들어 4월 말 중도해지했다.

돈을 빼기 전까지 펀드 수익률은 11%였으나 이후 인도 증시는 한 달간 40%가량 곤두박질쳤다. 증시가 어떤 방향으로 튈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

지난해 수익률 상위 10개 펀드 가운데 올해 수익률이 10% 이상인 펀드는 단 한 개도 없다. 오히려 10개 중 6개 펀드가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여 원금이 깨졌다.

한국자산운용협회 윤태순 회장은 “신흥시장에선 예상치 못한 위험요인으로 증시가 급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돈을 한곳에 몰아 넣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 물건너 투자 ‘물’먹지 않으려면

선진국-개도국에 분산 투자…달러+엔화 운용 환차손 예방

“인도 경제가 아무리 성장해도 인도 증시가 상승세를 타지 못할 수 있고, 인도 증시가 상승해도 인도 펀드가 다 높은 수익을 내는 것은 아니다.”

한국펀드평가 우재룡 사장은 “요즘 해외 펀드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수익률이 투자한 기업의 주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다”며 이렇게 경고했다.

최근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는 베트남 펀드에 대해서도 “베트남에 어떤 기업이 있는지도 모르고 베트남 펀드에 투자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펀드 투자자들은 펀드를 판매하는 금융회사 직원에게 투자 기업에 대한 정보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우 사장은 “펀드에 손실이 발생했을 때 왜 그런지 원인을 알아본다면 버스 떠난 뒤에 손을 흔드는 셈”이라며 “처음 가입할 때 판매 직원에게 투자 기업정보 등 전반적인 투자 현황을 요청하는 것은 투자자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강조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돈을 넣는 것도 피해야 한다. 해외 펀드 투자 비중은 전체 위험자산 비중의 30%를 넘지 않는 것이 좋다.

전 재산이 5억 원인 사람이 1억 원을 주식 등 위험자산에 넣었다면 해외 펀드 투자는 2000만∼3000만 원이 적당하다는 것.

여러 펀드에 돈을 조금씩 나눠 넣는 것을 분산투자라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예를 들어 최근 인기를 끄는 중국, 베트남, 인도 펀드 3곳에 모두 가입한 것은 분산투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금리 유가 등 해외 변수에 똑같이 반응해 한쪽 방향으로 오르고 내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시아 신흥시장 펀드와 선진국 펀드 등 주가 움직임이 서로 어긋날 가능성이 큰 지역을 섞어야 제대로 된 분산투자가 된다는 뜻이다. 달러, 위안화, 엔화 등 다른 통화로 운용되는 펀드에 나눠 투자하는 것도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는 요령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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