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 “다아는 이야기 모은것뿐,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

  • 입력 2006년 12월 30일 03시 00분


그는 덤덤한 표정이었다. 자신의 책이 관가(官家)에서 일으키고 있는 엄청난 파장을 마치 모르는 사람 같았다.

31일로 30년 공직 생활을 접는 산업자원부 무역위원회 산업피해조사팀 이경호(59·사진) 서기관.

그는 퇴직을 앞두고 재직 시절 보고 들은 중앙정부의 정책 실패와 부정부패 사례 등을 근무일지 형식으로 기록한 ‘과천블루스’(지식더미)를 펴냈다.

이 서기관은 책 내용이 보도돼 파문을 일으킨 29일 본보 기자와 만나 “책에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고 다 아는 이야기를 모은 것뿐인데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본보 29일자 A4면 참조▽

▶ 퇴직 앞둔 산자부 서기관 “신도시 정보 공무원들이 유출”

이날 오전 건설교통부에서 자신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는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그는 책에 신도시 개발 정보가 공무원들의 친인척, 개발업자, 투기세력 등에게 빠져나갔다는 등의 내용을 담아 충격을 던졌다.

이 서기관은 이날 마지막으로 산자부 종무식에 참석하려 했지만 건교부에서 책의 내용을 공식적으로 문제 삼고 나선 게 부담스러웠는지 하루 종일 집안에 머물러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서 “탁상행정이야말로 공무원의 암(癌)적 습관”이라며 “만약 건교부 직원이 부동산 변천사를 공부한 후 책상머리를 떠나 발로 뛰는 현장 행정을 했다면 고가(高價) 분양가 책정은 없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아무리 문제점이 많이 보이더라도 자신이 수십 년간 몸담았던 공무원 조직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책을 쓰기는 쉽지 않다.

이 서기관도 책의 서문에서 “독자들로부터 찬사를 받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다”라고 적었다. “공무원 사회의 무능, 불의, 부정, 부패, 비열 등에 대한 나 자신의 비판적 분노에 따른 것이다. 나는 내 주변에서 일어난 많은 사건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서기관은 “대다수 공무원은 지금도 곳곳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며 “수십 년간 일만 알고 살아온 고위 공무원들의 연봉이 기껏 6500만∼7000만 원밖에 안 될 정도로 적은 것은 정말 문제”라고 지적했다.

퇴직 후 어떻게 생활할 것이냐고 묻자 그는 “글을 계속 쓸 것”이라고 말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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