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현 상황에서 너무 비관적으로 전망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1991년에 시작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협상도 지지부진함을 면치 못하다가 1992년 여름에 가서야 극적인 타결을 이룬 전례가 있다.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과 세계적 수준의 제조업 국가인 한국의 FTA 협상은 NAFTA 협상보다 더 어려운 것이 정상인지 모른다. 미국이 추가 협상의 여지를 남긴 만큼 양국은 고위급 회담을 통해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양국의 고위급 회담이 제대로 가동되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의 일방적인 거부로 손상된 한미 FTA의 추진 동력을 회복하는 일이 시급하다. 미국이 법 개정 사항이라는 이유로 무역구제에서 양보를 거부한 것은 상호주의에 어긋난다. FTA 협상을 체결하려면 한국도 많은 국내법을 개정해야 한다. 미 통상법도 무역구제 관련 규정에서 개정이 필요한 경우 의회에 미리 보고하라는 것이지 절대 고쳐서는 안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반덤핑관세, 상계관세 등을 남발하는 미국의 지나친 무역구제 조치가 불공정무역에 대한 정당방위라는 주장에 대해 미국의 주류 경제학자들도 타당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미 행정부는 한국에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기 이전에 의회를 설득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필요하면 양국이 전제한 3월까지의 협상 시한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한미 FTA 협상의 추진 동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대응 자세도 바뀌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개혁을 추진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긴 했으나 개방과 경쟁 촉진을 통한 진정한 글로벌화는 요원한 실정이다. 외국인 직접투자가 줄어들고 열악한 기업 환경에서 벗어나 해외로 나가는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 투자환경이 퇴보하고 있으며 한미 FTA는 이러한 부정적 흐름을 역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윌리엄 오벌린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의 발언이 그래서 눈길을 끈다. 또다시 경제 위기를 겪지 않기 위해서는 글로벌화의 성공을 통한 경제의 업그레이드가 필수적이며 한미 FTA 타결은 한국이 기업 활동에 개방적이라는 신호를 전 세계에 보내게 될 것이다.
한미 FTA 협상의 타결은 북한 핵, 대선, 부동산, 환율 등의 암초로 불확실성에 휩싸인 한국 경제에 한줄기 단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한미 FTA의 타결로 안보와 미래 시장 및 수익 모델에 대한 불안 심리를 상당 부분 해소하면 기업의 투자심리 회복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기업은 미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 등과의 FTA 협상도 적극적으로 희망한다. 이들 국가와의 협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협상 타결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정부는 한미 FTA 협상 및 추진 방향에 대해 국익 득실을 따져 좀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전략을 마련해 고위급 회담을 통한 협상력 제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가의 미래 번영 기반을 좌우할 중대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여야가 아직 당론조차 정하지 않고 여론의 향배를 살피고 있는 모습은 온당하지 않다. 대선주자부터 구체적인 방침을 밝히고 협상 성공에 힘을 합쳐야 할 때다.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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