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비정규직 → 정규직’ 잰걸음

  • 입력 2007년 1월 4일 03시 00분


은행권을 중심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우리은행 노사가 비정규직 3100명의 정규직 전환에 전격 합의한 데 이어 외환은행과 국민은행 노사도 올해 상반기(1∼6월) 중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한 사실이 3일 본보 취재 결과 확인됐다.

신한과 하나은행 등 다른 은행들도 ‘원칙적으로 피할 수 없는 문제’라고 판단하고 대응방안 마련에 본격 착수했다. 재계는 고용의 유연성이 현격히 떨어지는 한국의 노동 현실에서 일방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요구는 문제가 있다며 제조업 등 다른 산업계로 확산될지에 주시하고 있다.

○ ‘정규직 전환, 넘어야 할 산 많다’

금융권이 서둘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나서는 것은 ‘비정규직으로 2년 넘게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는’ 비정규직 보호법이 올해 7월 시행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맞을 매, 먼저 맞겠다는 뜻이다.

양원모 국민은행 노조 대표위원장은 이날 “비정규직 보호법 발효를 앞두고 원론적으로 진행되던 은행권의 정규직 전환 논의가 우리은행의 노사 합의로 불붙게 됐다”고 했다.

외환은행 관계자도 “지난해 말 외환은행 임금 단체협상에서 결정된 비정규직 임금인상률은 10%로 정규직(3.2%)의 세 배가 넘었지만 숙련된 비정규직의 고용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필수라는 공감대가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더라도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은행은 정규직 임금을 동결해 정규직 전환에 따르는 비용 260억 원을 확보했지만 이에 불만을 갖고 있는 정규직 직원이 적지 않아 ‘노-노’ 갈등이 우려되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규직 전환에 따라 고용 안정이 확보되는 비정규직도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정규직은 4개 직군, 비정규직은 3개 직군으로 나눠 별도 직군제로 운용되기 때문에 완전한 조직통합으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 고용 유연성 확보가 관건

여성 창구직원이 많은 은행에서 직군제는 정규직 전환과 함께 ‘뜨거운 감자’로 분류된다.

하나은행의 직군제인 ‘창구직군 제도’를 예로 들어 보자.

서울지방노동청은 2005년 하나은행 ‘창구직원 제도’에 대해 ‘성차별 요소가 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이 제도는 국내 금융권에 여전히 논란의 불씨로 남아 있다.

외환위기 이후 대부분의 창구 직원을 비정규직으로 채워 왔던 은행들은 2, 3년 전부터 사내(社內) 선발 등을 통해 연간 100여 명씩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본부장은 “금융권의 정규직 전환을 일반 제조업체에까지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한국 사회의 고용 유연성이 낮다”며 “각 기업이 처한 사정을 무시한 일방적인 정규직 전환 요구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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