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4일 발표한 올해 경제운용방향에서 원.엔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막기 위해 1997년 이후 사라진 원.엔화 직거래 시장 등 달러를 제외한 이종통화 시장을 개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와 금융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부족한 원.엔 거래 수요를 고려할 때 제대로 시장이 형성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는 지적이 많다.
◇원.엔 거래시장은= 두 통화 사이의 가치 교환 비율, 즉 환율은 기본적으로 일반 상품과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시장에서 결정된다.
실제로 시시각각 변하는 원.달러 환율의 경우 은행과 기업 등 시장 참여자들이 서울외환시장을 통해 끊임없이 원화와 달러를 사고 파는 과정에서 정해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통화 사이의 환율이 이처럼 시장에서의 직거래를 통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원.달러 외환시장 이외 원.엔, 원.위안 등 다른 통화와 원화의 직거래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다. 거래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통화에 대한 원화의 환율은 달러라는 제3의 통화를 매개로 산술적 계산을 거쳐 얻어진다. 예컨대 원.달러 환율이 100원/달러고, 국제 시장에서의 엔.달러 환율이 10엔/달러면 원.엔 환율은 10원/엔이 되는 식이다.
◇이종통화시장 왜 필요한가= 다양한 통화시장의 필요성은 그동안 국회나 민간경제연구소 등도 꾸준히 제기해왔다.
현재의 원.엔 환율처럼 달러를 매개로 결정되는 '재정(裁定)환율'의 경우, 달러에 대한 원화 가치는 변하지 않더라도 달러 대비 상대 통화의 가치가 급변하면 자동으로 폭락 또는 폭등할 수 밖에 없는 문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원.엔 환율의 경우가 그 대표적 예다.
지난 3일 원.엔(100엔) 환율은 마침내 9년 2개월 만에 처음으로 770원대까지 주저 앉았다. 작년 말 이후 원.엔 환율이 계속 떨어지는 것은 엔화가 달러에 대해 지속적으로 약세이기 때문이다. 원.엔 환율의 급락은 수출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는 우리 기업들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다.
그러나 원.엔 시장을 통해 두 통화의 집적 거래가 활성화되면 환율이 '한 다리 건너' 결정될 때 보다 실제 시장 가치를 정확히 반영하고 변동폭도 축소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유동성 부족 해결이 관건 = 원.엔 시장은 이미 1996년 10월 도입돼 운용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은행간 장내 원.엔 시장은 유동성 부족으로 3개월여 만인 이듬해 1월 이후 거래가 중단됐다.
은행과 고객 사이의 원.엔 거래 규모가 많지 않고 시장구조상 투기적 거래도 부진, 시장 형성 자체에 실패한 것이다. 당시 원.엔 시장의 거래량은 원.달러 시장의 0.3% 수준에 불과했다.
문제는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원.엔 직접 거래 수요가 충분치 않아 상황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역거래에서 엔화 결제 비율이 10%를 밑도는데다 엔화 차입이나 엔화 펀딩 등 금융 부문의 엔화 관련 거래도 미미한 수준이다.
재경부 관계자도 "97년 당시 보다 원.엔 시장 개설 환경이 나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특히 주요 시장 참여자인 은행들이 '원.엔 거래 수요가 거의 없어 관련 인원을 충원해 영업에 들어가도 인건비조차 못 건진다'며 여전히 회의적 입장"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재경부는 현실적으로 당장 개설이 어렵더라도 일단 올해 초 은행권과 한국은행, 외환시장운영협의회 등과 구체적으로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협의해 도입 가능성을 점검할 계획이다.
원.엔 시장의 유동성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는 유동성공급자(LP) 제도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엔화 등 달러 이외의 통화의 결제 비중을 키우는 일이 시급한 과제다.
표한영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 원.엔 시장의 유동성이 충분해질 때까지 몇 개 외국환은행을 유동성공급자(LP)로 지정, 의무적으로 외환중개사에 상시 매입 또는 매도 주문을 내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장기적으로 원.엔 시장의 유동성을 확충하려면 무엇보다 달러 이외의 엔화, 위안화 결제 비율을 높여야한다"며 "일본.중국 등과의 교역에서 결제대금을 달러가 아닌 원.엔.위안화 등 지역통화로 지불하는 방안을 적극 협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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