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인 1987년 7월 현대자동차 노조 창립을 주도했고 민주노동당 공천으로 울산 북구청장을 지낸 뒤 지난해 8월 현대차에 복직한 이상범(50) 씨. 이 씨는 9일 오전 11시 근무지인 울산공장 내 울산교육팀 성내연수원 2층 사무실에서 본보 기자와 만나 노조에 ‘쓴소리’를 했다.
그는 “국가 경제가 어렵고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 근로자 대부분이 성과급을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고액 임금을 받는 현대차의 노조가 연말 성과급을 더 달라고 투쟁하는 것은 국민에게 위화감을 조성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 씨는 “시무식장에 분말 소화기를 뿌리는 등 시무식을 방해해 국민에게 현장 노조의 폭력성을 부각시킨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사회적으로 폭력시위에 대해 반감이 많은 이때에 폭력을 행사한 것은 노조의 입지를 스스로 좁힌 경솔한 행동이었다는 것.
현대차가 매년 파업을 반복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컨베이어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자동차 업종의 공정 특성과 함께 노조 내에 깊숙이 뿌리 내린 재야 노동운동 세력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차는 대부분의 공정이 컨베이어시스템으로 운영돼 극소수만 파업을 벌여도 전체 공정이 멈추기 때문에 파업이 회사 압박의 유용한 수단이라는 것.
또 그는 “노동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현대차 조합원들에게 뿌리내리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며 “이 때문에 현대차 노조 내에는 10여 개 조직이 있어 조직마다 노조위원장 선거 때면 깃발을 꽂고(후보를 내세우고) 선명성 경쟁을 벌이다 보니 과격한 노선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씨는 현대차 경영진에 대해서도 노사관계를 다루는 태도가 세련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씨는 “성과급이 경영목표와 연계되지 못하고 사실상 임금이 돼 버린 20여 년간의 관행을 하루아침에 바꾸려고 하니 지금과 같은 마찰이 일어나는 것”이라며 “회사의 강경 자세가 오히려 온건하고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조합원들마저 등을 돌리게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고향인 충북 보은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9월 현대차에 입사한 이 씨는 ‘노동자 대투쟁’ 직후인 1987년 7월 현대차 노조 임시 집행부 위원장으로 노조 결성을 주도했다. 현대차 2대(1990년 9월∼1991년 8월) 노조위원장과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현총련) 공동의장을 거쳐 울산시의원(1998년 7월∼2000년 2월)을 지냈다.
1995년 5월 근로자 분신자살 사건으로 구속돼 7개월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2002년 7월 민주노동당 공천으로 울산 북구청장에 출마해 당선됐으며, 2004년 11월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 파업 참가 공무원에 대한 징계를 하지 않은 혐의(직무유기)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돼 직무가 정지되자 지난해 5월 사퇴했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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