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본보가 3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 경제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설문조사에서 올해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요인 1∼3위로 꼽힌 응답이다.
이 가운데 3위로 조사된 정치변수의 비중이 9일 노무현 대통령의 전격적인 개헌(改憲) 추진 발언으로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사실상 임기 마지막 해를 맞아서까지 경제와 민생을 챙기기보다는 정치에 ‘다걸기(올인)’한 것처럼 비치는 대통령의 행태가 우리 경제를 위협할 중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 ‘개헌 카드’로 경제 불확실성 증폭
경제 전문가들은 국회 통과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대통령이 개헌론을 불쑥 꺼낸 것이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워 침체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한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올해는 북한 핵실험 문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이슈가 산재해 있다”며 “개헌 논의 등으로 불확실성이 크게 확대되면 가뜩이나 위축된 기업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기 1년여를 남긴 시점에서 각종 경제 현안들이 정치적 판단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노 대통령은 4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경제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앞으로 수도권 내 공장 증설은 예외적인 경우 외에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꼭 필요한 경제 현안까지 대통령은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정치적 이슈로 인식하고 이에 따라 판단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가뜩이나 대통령 선거의 해를 맞아 경제논리보다는 정치논리가 득세할 것을 우려해 투자심리가 위축된 각 기업들은 ‘대통령 변수’가 어떤 상황으로 전개될지 몰라 당분간 적극적인 투자를 하기보다는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 ‘정치 올인’으로 경제 리더십 무너져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노 대통령이 임기 내 개헌을 추진하면 경제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약해지고 경제 리더십도 부정적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정부의 역량을 결집해도 해결할까 말까 한 주요 경제현안도 지지부진해질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 개혁은 최근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금으로서는 (2월 임시국회 처리) 전망이 거의 없다”고 실토할 만큼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국민연금과 맞물려 이뤄질 전망이던 공무원연금 개혁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당 안에서도 갑론을박(甲論乙駁)하고 있는 각종 부동산 정책, 3월 타결을 목표로 한 한미 FTA도 논의의 초점이 흐려질 가능성이 높다.
홍익대 김종석(경제학) 교수는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요즘 정치상황은 아들인 현철 씨 문제로 대통령이 주요 국정에서 거의 손을 뗐다가 외환위기를 맞았던 김영삼 정부 임기 말기까지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공무원들이 책임 있게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다시 경제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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