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 ‘日 버블붕괴’ 닮아가나

  • 입력 2007년 1월 15일 02시 54분


정부가 대출 규제를 포함한 강도 높은 부동산 대책을 쏟아 내면서 일본식 ‘버블(거품)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민간 경제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은 “정부의 지나친 주택담보대출 규제와 통화 긴축정책이 자칫하면 ‘집값 급락→가계 부실→가계부채발(發) 금융 위기→일본식 장기 경기침체’를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부동산 올인(다 걸기) 정책’에 한국 경제가 저당잡혔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 확대되는 부동산 버블 우려

일본의 땅값 상승률과 경제성장률은 1991년 부동산 버블 붕괴 전 두 차례 크게 벌어졌다.

1987년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4.4%였으나 공시지가 상승률은 21.7%로 그 격차가 17.3%포인트나 됐다. 일본 정부가 ‘엔고(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금리를 크게 낮추자 시중 자금이 풍부해졌고 그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이듬해 다소 좁혀졌던 격차는 1989년 경제성장률 6.6%, 공시지가 상승률 16.6%로 다시 벌어졌다. 1990년 일본의 부동산 가격 총액은 20조 달러로, 도쿄(東京)를 팔면 미국 전체를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

한국의 가계소득 증가율과 주택 가격 상승률 추이를 비교한 결과도 2002년과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큰 격차를 보이는 등 최근 일본과 유사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한국에서도 부동산 버블이 확대되고 있는 징후로 받아들이고 있다.

○ 버블 대응 방식이 더 문제

경제의 기초체력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부동산 자산 가격은 결국 꺼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대응 방식. 지나친 부동산 경기 과열이 경제 위기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자 일본 정부는 1989년부터 동시 다발적인 규제책을 쏟아 냈다. 그해 5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금리를 연 2.5%에서 6%까지 올렸고 1990년 3월에는 ‘부동산 대출 총량 규제’까지 꺼내 들었다.

과도한 규제책은 결국 부동산 시장을 급격히 얼어붙게 만들었고 일본은 이후 ‘잃어버린 10년’을 맞았다.

한국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해서도 일본식 규제책과 흡사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4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가계의 대출상환 능력이 취약한 상태에서 시장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무리한 가계부채 축소 정책은 내수 부진을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의 1990년대 장기 불황은 현재 국내 상황과 유사하게 정부의 무리한 통화 긴축 정책, 부동산 대출 규제 강화로부터 시작됐다”며 “국내 가계부채가 줄어드는 과정에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 일본식 장기 불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대선 앞둔 정치 논리에 백기

정부가 각종 부작용을 예상하면서도 무리한 정책을 쏟아 내는 것은 대선을 앞두고 올해만큼은 무조건 부동산 가격을 잡아야 한다는 정치권에 ‘백기(白旗)’를 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주택담보대출 규제와 민간 택지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등을 뼈대로 하는 이번 1·11 부동산대책은 정부의 기존 방침과도 다른 선택이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번 대책은 경제 논리에 충실했다기보다는 정치 논리가 상당 부분 가미된 포퓰리즘적 성격이 짙다”며 “현재 주택 가격 안정세가 나타나고 있지만 이는 시장 기능은 왜곡되면서 가격만 안정되는 측면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 연구소장은 “현재의 금융 긴축 정책은 과도한 수준으로 시장에서 어떤 부작용을 초래할지 예측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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